2월 어느 날 아침, LA시 외곽에 거주하는 한인 가족이 식사를 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반찬은 전날 마켓에서 사온 ‘명태 꼬다리’.
모두 맛있게 먹기 시작했는데 그 속에는 생선살도 내장도 아닌 희멀건하고 길쭉한 것이 나왔다. 기생충이었다.
모두들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기겁했다. 하루를 망쳐버리고 기분까지 상한 가족들은 ‘분노’에 떨었다. 과거 같은 마켓에서 구입한 생선 손질상태가 엉망이어서 항의했으나 ‘본전도 못건진’ 불쾌한 경험이 있던 터였다.
한인 가족은 언론사에 제보했고, 보건국에도 신고를 했다. 마켓을 먼저 찾아봤자 면박부터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괘씸해 이번에는 본떼를 보여줘야 한다는 심리도 작용한 것이었다.
‘생선에는 기생충이 있다’는 것은 기본상식이기 때문에 요리 전문가에게 문의를 했다. 한식 전문가는 생선을 완전히 얼리던지, 건조시키지 않으면 기생충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켓측은 “반건조해 냉동포장된 ‘명태 꼬다리’란 재료를 써서 양념해 익힌 것”이기 때문에 원재료 문제지, 조리과정 문제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물론 “이런 적은 한번도 없다”는 설명과 함께 “이유야 어쨌건 소비자에게 사과하고, 환불해줄 용의도 있다”는 말까지 다짐받았다.
며칠 후 보건국에서 조사를 나왔고, 약 1시간에 걸쳐 반찬 조리과정과 보관과정을 지켜본 조사관은 특별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돌아갔다.
먹는 것만큼 예민한 이슈는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생, 청결 문제가 발생해 공론화되면 마켓은 설사 논리적으로 해명할 근거가 있더라도 집중 포화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한인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마켓에 관한 불쾌한 집단적 기억 때문이다.
수많은 아이템의 구매가 이뤄지는 마켓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어떤 형태로든 위생이나 청결, 유통기한 등 다양한 문제로 불만을 가졌음직하고 이에 대해 항의하더라도 속시원히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이런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게 됐다.
물론 한인 마켓들도 과거 ‘모르쇠’로 일관하던 부정적 대응방식에서, ‘잘못된 점은 인정하고 곧바로 시정조치하겠다’는 식의 긍정적 대응으로 바뀌었지만, 불쾌한 경험을 통해 신뢰를 잃은 한인들은 ‘걸렸다간 봐라’는 식으로 마켓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 이 한인가족이 구입한 생선문제로 항의했을 때 마켓측이 다르게 반응했다면, 이번 경우에는 다른 해결책을 모색했을 수도 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겉으로는 업소를 찾는 고객이더라도 불만을 누적시키고 있다가 급격히 폭발해 업주를 위협하는 칼날로 되돌아올 수 있다. 신뢰는 작은 계기를 통해서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지 조금씩 잃었다가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형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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