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한 공원의 벚꽃나무들이 예년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
해마다 봄이 가까워오면 일본의 관심은 온통 언제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인가에 쏠린다. 기상 관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벚꽃의 꽃망울을 클로즈업 하면서 개화시기를 카운트다운 하는 등 한바탕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지난 20일 도쿄 야스쿠니 신사내의 벚꽃나무 한그루에서 6송이의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봄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벚꽃 개화시점이 최근들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의 개화는 지난 50년 동안의 도쿄지역 평균 개화일자보다 무려 8일이나 빨랐다. 기상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개화 매년 조금씩 빨라져
과학자들 “지구온난화 탓”
일본전역은 축제분위기로 들썩
식물학자인 히로시 나가타 메이대학 명예교수는 “지구의 기상변화가 일본의 벚꽃 개화시기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기뿐 아니라 벚꽃 종의 분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가타교수는 “도쿄와 교토와 같은 대도시의 대표적 종인 소메이요시노가 개화에 적절한 기온을 찾아 점차 북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벚꽃의 개화는 일본인들에게 식물학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문제로 받아 들여진다. 일본인들은 10일이라는 짧은기간에 활짝 피었다 시들고 결국 떨어지는 벚꽃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반추한다. 그래서 벚꽃 시즌이 되면 회사원들과 학생들, 그리고 주부들까지 일은 일단 뒤로 밀어 놓은 채 벚꽃나무 밑에서 음주가무로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벚꽃은 남쪽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한달에 걸쳐 추운 호카이도 지방까지 서서히 올라가며 꽃망울을 터뜨린다. 일본은 지난 1953년부터 이것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 오고 있는데 공식적인 기록이 시작된 이후 개화시기는 4.2일이 빨라졌으며 대도시들의 경우에는 위도와 관계없이 6.1일이나 당겨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는 도쿄에서 가장 먼저 피었으며 다음날에는 후코오카에서 꽃이 피었다. 남쪽 규슈지방의 농촌지역보다 빠른 개화이다. 이처럼 대도시에서 벚꽃이 먼저 피기 시작하는데 대해 과학자들은 “도심지역의 고탄소 연료 사용으로 온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구온난화라는 일반적 원인에다 도심지역 온도가 급상승하는 일명 ‘열도현상’(heat island phenomenon)이 더해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기후변화는 벚꽃의 조기개화만 초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 갈수록 따뜻해지면서 벼의 모내기 시기와 찻잎 수확시기도 앞당겨 지고 있다. 나가사키지역의 제비꼬리 나비가 일본 북부지역에서 관찰되는 등 생태계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과학자들에게나 심각한 문제일 뿐 보통의 일본인들에게는 벚꽃 개화를 어떻게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으로 만드느냐가 관심사이다. 벚꽃시즌은 일본 관광업체들의 최대 성수기이다. 따라서 개화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게 대단히 중요한데 올해 예상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는 바람에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 업체들은 개화시기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예약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시정부는 개화시기를 조절하기 위해 벚꽂나무 주위에 눈을 쌓는 등 온갖 아이이어를 동원하고 있지만 별무 효과이다.
일본인들에게 벚꽃 조기개화의 과학적 의미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통상적으로 벚꽃 개화시기는 일본 학교들의 짧은 봄방학과 기업들의 회계연도 종료시기와 일치해 왔는데 이것이 틀어지면서 일정조정들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일본사회의 빡빡한 일상에 잠시 휴식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봄 벚꽃은 그런점에서 분명 식물학적 현상을 뛰어 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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