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애리조나주에 살고 있는 형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조카들은 6세와 4세였다. 우리를 보자 그 아이들은 식탁 밑으로 숨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가져간 선물을 건네기 위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아이들은 식탁 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형님께 물었다. “왜 애들이 숨어서 나오려고 하지 않느냐?” 엄마 아빠가 일터로 나가면서 “절대로 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되고, 전화를 받아서도 안 된다. 커튼을 열어 놓아도 안 되고 꽁꽁 문을 걸어두고 TV도 작은 소리로 켜고 보아라. 만약에 이웃 사람들이 너희만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경찰에 연락하여 너희들을 데려 간단다. 절대로 절대로…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살고 싶지 않거든 우리말을 들어야 해”라고 계속적으로 주입시켜 놓았더니 이렇게 친척들이 왔는데도 아이들이 패쇄적으로 되어 버렸다며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영어가 부족한 누님이 나에게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부형을 불렀는데 통역 좀 해달라고 간청해 함께 학교를 간 적이 있다. 우리는 점심식사 시간에 도착하였고 나는 조카를 만나야 했기 때문에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조카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 넓은 강당에 혼자 앉아서 무엇을 먹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 아이는 내 조카였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외톨이가 되어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여기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니?” 조카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영어 대화가 되지 않아 혼자 있는 것이 편해요.”
우리의 처지는 이렇게 아이들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이해한다. 우리의 부모가 미국에 생활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통 일터에 매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식탁 밑에 숨던 아이들, 외톨이가 되어서 식당에서 식사를 못하던 아이.
그 후 16년이 흘렀다. 식탁에 숨던 아이들은 의사가 되었다. 외톨이가 되어 식사를 하던 아이도 역시 의사가 되었다. 우리에겐 ‘어떻게’가 필요했다. 우리는 아이들의 문제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 아이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주었다. 대인 기피증을 가진 아이들에게 부모는 축구를 가르쳤고 혼자서 식사를 하던 아이에게 부모는 수영을 가르쳤다. 축구와 수영이 아이들을 의사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동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MLB가 무엇인지 몰랐다. 박찬호 선수가 다저스 구장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구는 나의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찬호 선수가 다저스 구장에서 선발 등판할 때 나는 처음 야구장을 가보았다. 한국 선수가 뛰는 경기와 뛰지 않는 경기는 하늘과 땅과 같이 엄청난 차이가 난다.
내가 지금까지 본 축구경기 중 가장 아름답고 손에 땀을 쥐게 한 경기는 내 아들이 뛰는 경기였다. 월드컵보다도 더 흥미롭고 마음을 졸이는 이러한 경기는 세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다. 아이와 그리고 부모가 함께 공유할 가슴 뛰고 벅차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부모인 당신에게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다. 진실하게 답하시기 바란다. “나는 나의 삶에서 무엇을 가장 즐거워하는가?” 만약에 그 답이 가정과 아이들이 아니라면 당신은 자녀들을 제2의 조승희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전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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