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으로 15년의 수형을 마친 전과자가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생으로 등록한 상태에서 또다시 성폭행을 저질러 붙잡혔다.
가장 무서운 적은 그냥 이리가 아니라 양의 탈을 쓴 이리다. 대중의 앞에서는 가장 선한 척 함으로써 상대방을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어 힘없는 여인을 덮치는 치졸한 범행이다.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운 말은 다 지껄였을 것이다. 세상의 가장 고귀한 말로 남들 앞에서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악한 마귀의 얼굴로 변하여 죄를 범했을 것이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원래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파는 그의 철면피에는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을 팔아 착한 양처럼 행동하고 안으로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리처럼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스스로 종교인이라고 하여 양의 행세를 하는지도 모른다. 말은 허무할 뿐이다. 사라지는 말은 누구도 보증하지 못할 뿐이다. 입으로 떠드는 하늘나라는 허황되고 뜬구름처럼 누구도 잡지 못하는 빈말이 될 것이다.
누가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볼 것인가? 누가 10년이 지난 후, 또는 그가 죽는 날까지 기다려 그의 행동이 말에 합당했는지를 증명할 것인가?
우리는 종교인들의 현란한 말들을 너무도 넘치도록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인지 참인지 가리기보다는 ‘모른 체’ 하면서 지내왔다. “사실이겠지. 혹 사실이 아니더라도 역시 좋은 말이니까 괜찮아.”
너무 좋은 말의 허구에 속으면 우리는 더욱 역겨움을 느낀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여 너희 위선자들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예수님 역시 가장 미워한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 남을 속이고 남을 괴롭히는 종교인들이었다. 교회를 외면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인들의 이런 가증스러운 이중성을 보고 실망한 경우가 많다.
목사님의 얼굴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는 없을까? 장로 집사님들의 위선을 보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집만 드나드는 행복은 없을까? 온 땅을 따사로움으로만 비추는 햇빛을 보면서 하나님은 원래 저런 햇살처럼 아무 말 없이 우리 인간들을 보살피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윤진영/센터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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