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남부에 길게 뻗어있는 유프라테스 강줄기의 입구에 들어서자 도선사(導船士:뱃길을 안내하는 항해 파일럿) 선박을 만날 수 있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페르시아만에 진입한 이튿날, 이란 해군의 공식 영접을 받은 것이다. 긴 오후의 막바지, 대한민국 군함 ‘경남함’이 아라비아해의 힘겨운 항해를 마감하느라 검은 연기를 내 뿜으며 아바단 항구로 들어서던 중이었다. 가을 철새들이 머물고 간다는 그 강가에 때 마침 모여든 새떼가 무리지어 하늘을 뒤덮으며 장관을 이루었고 열대성 야자수들이 잡목과 서로 뒤엉킨 채 강물에 몸을 담고 시원스런 자태로 대한민국 해군 사관학교 원양 훈련단을 맞이하였다.
강숲 갈대밭에서 느닷없이 악어떼가 불쑥 고개를 들고 입을 쩍쩍 벌리며 강가 이쪽저쪽을 탐색하며 한가롭게 놀고 있었는데 이윽고 강에 일몰이 찾아드니 황토 빛 강물은 파스텔 색상에 젖어 들며 하루해를 접는다. 갑판에 우뚝 선 세일러복 차림의 해군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손을 흔들어 반기던 이라크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요청했고 이에 우리 측은 통조림 몇 박스를 보트에 태워주며 화답했다. 녀석들은 비쩍 마른 몸매를 들어내어 고추를 내놓고 물장구를 쳐대며 초저녁 물탕질을 즐기고 있었다. 가을 강가에 비춰졌던 그날 어린아이들의 초췌한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깊은 연민으로 남아 있다.
다행히 그들 영토의 대부분인 사막지대는 알라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 석유가 묻혀 있는 기름진 땅이다. 하루에 다섯 번씩 성지 메카를 향해 코를 모래에 파묻도록 절을 하면서 올리는 살라(Salah)의 기도 소리는 곧 신의 은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묘하게도 아랍어를 수천 년 동안 같이 사용해온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 그러한 ‘알라신의 총애’를 함께 받고 있다. 물보다 싼 석유가격이 그 혜택의 상징이다. 검붉게 타오르는 석유가스의 불길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유대 민족에 못지않는 이슬람식 선민의식이 깔려있다. 아라비안나이트와 페르시아 제국의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는 가운데 키워 온 자긍심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라크 내 실업자가 줄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등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바그다드 시내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보다 두 배 정도로 오르고 이라크 화폐 디나르 가치도 안정되는 등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국이 안정을 찾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부동산 매매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시중에 자금도 풀렸다고 신문은 전한다. 투자 채비의 적기라 할 만 하다. 이라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후세인 정권하에서 1,000달러선으로 떨어졌다가 작년부터 경제가 다소 활성화 되면서 1800달러 선으로 다시 올라섰다. 하루 6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연간 200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점이 무엇보다 큰 뒷받침이 되었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야 어떻든 전쟁은 현실적으로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고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우리의 자연환경과 철모르는 동심에 깊은 아픔을 남긴다. 폭염이 시작되는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적진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을 양국 병사들의 비지땀과 그들을 기다릴 가족들의 타는 가슴을 헤아린다면 어떠한 명분에서든 이 땅에 피를 가르는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겠다. 미 군정이 실시되고 있는 지금, 이라크의 양식 있는 애국자들이 모래언덕에 앉아 무너진 영화의 고대 도시 바빌론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다. 이라크에선 연일 자실 폭탄 테러로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미군 사망자 숫자는 3,300명을 넘어섰다. 오늘도 전선에서 들려오는 젊은 병사의 목 메인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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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윈 부동산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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