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나갔다가 그대로 생이별이 됐다. 그렇게 헤어 진지 57년이다. 그 아내를 만났다. 아들을 대면했다. 오빠를, 여동생을 부둥켜안았다. 꿈이 아니었을까. 평생의 애절한 염원이 환상으로 비쳐진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남과 북으로, 또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미국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혈육을 만났다. 반세기도 훨씬 더 된다. 20,000일도 넘는 그 나날들을 하루같이 기다렸다. 그러다가 만났다. 불과 며칠간. 그리고 돌아왔다.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다. 그래서 한낱 꿈이었는지 모른다.
LA 민주평통(회장 신남호) 평양방문단에 참가한 미주의 이산가족들이 북한에 두고 온 혈육을 만났다. 2년 전 당시 김광남 회장이 이끌었던 평통의 1차 방북이 한국 정부 산하 해외단체의 첫 평양방문이란 기록을 세운데 이어 이번 평통의 2차 방북사업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켰다. 미주 한인사회와 북한과의 교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것이다.
불과 6명의 이산가족 1세대가 참가한 10일도 채 못 되는 방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 본다. ‘이산가족은 무조건 만나게 해야 한다’-. 이번 방문이 전해준 우선의 가장 시급한 메시지다. 하나 같이 고령자들이다. 이산가족 1세대의 앞으로의 세월은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다. 생이별의 아픔 속에 너무나 긴 억울한 세월을 지내왔다. 이들이 헤어진 부모를, 형제를, 자식을 만나는데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된다. 무조건 만나게 해야 한다.
이산가족 1세대는 LA 일원에만 5,0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그동안 ‘쉬쉬’하며 북한을 다녀왔다. 비공식 채널을 통해 혈육을 만난 것이다. 때문에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 악덕 브로커에 걸려들어 돈만 날렸다. 혈육을 만나는 조건으로 뒷돈을 강요받았다. 미주 한인의 방북과 관련해 들려오던 소리들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정부산하 단체인 평통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은 1회성의 이벤트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북한 측은 평통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 할 뜻을 비쳤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미주와 북한의 이산가족 상호방문을 제도화해야 한다. 방문자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지적대로 이산가족 1세대의 앞으로의 시간은 얼마 없어서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는 그리고 더 나아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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