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지난주 칼럼을 읽은 한 지인이 전화를 해왔다. 6월은 6.25와 ‘6월항쟁’이 있는 한과 울분의 달인데, 한국에는 없는 아버지날을 들먹인 것은 부적절했다는 코멘트였다. 맞는 말이다. 6월은 현충일까지 끼었으니 분명히 호국보훈의 달이다.
안 그래도 엊그제 워싱턴주 6.25 참전동지회로부터 공문이 왔다. 오늘(23일) 올림피아의 참전 용사비 앞에서 열리는 6.25 발발 57주년 기념식에 많은 한인이 참석하도록 홍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유난히 57이라는 수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세월의 장점은 망각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이라는, 결코 안 잊을 것 같았던 6.25 노래를 필자는 거의 다 잊어버렸다. 6.25가 환갑이 다 돼가면서 당시 동족상잔의 상처도 많이 아물었다. 6.25 자체를 모르는 세대가 더 많아졌다.
필자의 초중고 시절엔 해마다 6.25 날이면 학교에서 반공을 주제로 한 작문대회나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열렸고 전교생이 공설운동장의 반공집회에 동원돼 시가행진을 벌이기 일쑤였다. 모두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반공투사로 규격화됐다.
요즘 초등학교에선 반공은 고사하고 6.25도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다. 초등학생 세 명 중 한명은 학교 수업시간에 6.25에 관해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고, 6.25에 관해 좀 안다는 학생들도 거의 40%가 6.25를 임진왜란 등과 혼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6월항쟁은 달력에도 표시돼 있지 않아 6.25보다 더 생소한 듯하다. 그래도 “탁 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당시 고위 수사관계자가 만든 불후의 망발을 기억하는 한인은 많다. 서울대 박종철군이 1987년초 경찰 고문으로 숨지면서 연일 벌어진 대학생 시위는 6월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군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맞고 숨진 후 10일 절정에 달했다.
결국, 노태우 당시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를 지지하는 소위 6.29선언을 발표함으로서 6월 민주항쟁은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양 김 후보가 서로 물고 늘어지며 노태우의 6공 탄생을 돕는 바람에 6월항쟁은‘떡 만들어 남 준 꼴??이 됐다.
그 양 김씨 중 하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6월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자신이 업적으로 내세우는 남북관계 개선을 6월항쟁의 개혁적 성과로 꼽았다. 그는“예전에는 휴전선에서 소총소리만 나도 불안해했던 국민들이 이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명이 흐려져도 한참 흐려진 모양이다.
이제 6.25동란 57주년 기념식도 잇달아 열리겠지만 요즘의 한국 분위기를 감안하면 대부분 올림피아 행사만 못할 듯하다. 한 단체장은“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이라는 6.25 노래와 달리 현 정부는??이제는 잊으리??라며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고 꼬집었다.
어차피, 6.25는 진작부터 잊혀진 전쟁으로 불렸다. 3년 남짓한 기간에 3백만명 이상이 죽었고 16개국이 참전한 실제적인 3차 대전이었으며 냉전시대를 연 역사적 전쟁이었지만 규모가 더 큰 제2차 대전과 월남전 사이에 끼어 미국인들의 머리에서 쉽게 사라졌다.
앞으로 또 반세기가 지나면 6.25는 아예 없었던 전쟁이 될는지 모른다. 참전동지회의 공문도 머지않아 끊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입맛이 씁쓸하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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