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달리는 것 같아 파트타임으로 일할 학생을 찾는다고 광고를 냈더니 아주 앳되어 보이는 학생이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한다.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스물한 살이라고 하면서 휴학 중이고 아버지와 단 둘이 있다고 한다. 호감이 가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내일부터 일하라고 했더니 바쁜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일하겠다고 한다. 기특하고 또 기특하여 하는 모양을 지켜보니 여간 일을 잘 하는 게 아니다.
몇 달이 지나 어떤 때는 하루 세끼를 같이 하고 밥과 된장찌개를 한 수저로 휘휘 휘저으면서 같이 밥을 먹게 되자 꼭 한 식구 같은 마음이 들어 “얘야, 너 지금부터 내 아들해라” 했더니 녀석이 넉살좋게 “네. 그러지요”한다.
그 뒤로 급할 때면 그 아이가 은행에도 다녀오고 차를 몰고 도매상도 다녀오고 하며 마켓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K가 자기 일처럼 마켓을 돌보는 것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여 그 아이가 학교에 복학하면 작지만 학비를 도와주자고 나는 집 사람과 의견을 모았다.
집에만 하루 종일 계시는 아버지가 보기 민망하다고 했다. 일자리를 찾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다시 복학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다가 오늘 밤 집에 가거든 아버지에게 이 마켓에서 일해도 괜찮을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 아이가 정말 그래도 되겠느냐고 몇 번을 되물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서 듣지 못했던 아이의 가정 이야기를 아버지를 통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직 영주권도 없는 상태이고 그 아이가 유학생 비자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가 휴학한 일이며 곧 다시 복학해야 신분이 유지되는데 돈이 걱정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마켓에서 일한지 몇 주일 지났을 때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돈을 열흘간만 자기 통장에 넣어줄 수가 없느냐고. 은행잔고가 있어야 아이의 학교 복귀가 가능하다고 했다. “얼마가 필요하지요?”“8,000달러입니다.”
나는 밤새도록 망설이다가 다음 날 아침 아버지의 통장으로 돈을 넣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조그만 케익을 사들고 왔다. 그리고는 넙죽 절을 하면서 정말로 고맙고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래. 그래. 열심히 공부하면 그것으로 다 갚는 거야.”
그 아이는 학교에 가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마켓에 나와 일을 했다. 아버지가 일하는 오전에도 나와 일을 했다. 우리는 가능하면 그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려고 야채를 다듬는 종업원도 내보냈다. 학교 다니면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금요일 저녁 바쁜 시간에 은행엘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 아이를 시킬까 하다가 내가 가기로 하고 아이에게 카운터를 맡겼다. 허겁지겁 은행을 갔다 와서 보니 제일 바쁜 시간인데도 매상이 너무 적었다. “손님이 없었니?” “네.” “그래?”
내가 오고 바로 그 아이가 제 볼 일로 일찍 마켓을 나가고 난 뒤에 나는 하도 이상해서 난생 처음으로 비디오카메라를 돌려보았다. “정말 손님이 없었나?”
한번만이라도 찾아가 용서를 빌게 해달라고 아버지는 통사정을 했다. 그 날 이 녀석이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아버지는 울면서 말했다. 그 아이도 울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그 아이의 흐느끼는 울음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나는 어디에서도 두 부자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기회를 주었어야 했을까?
그러나 한 번 금이 간 사람들이 다시 하루 종일 마주본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 것이다. 그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를 내려놓던 그 날, 나는 그 아이보다 더 비참한 심정으로 울고 있었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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