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반 순항하다 美 입성과 함께 좌초
부실 공연기획사 선정 등 문제점 노출
유시필종(有始必終).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수 비(본명 정지훈ㆍ25)의 월드투어는 지난달 30일 오후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릴 공연 취소로 유시무종(有始無終)이란 쓴소리를 듣게 됐다. 중국, 미국 등 연기 또는 취소된 지역에 대해서는 가을께 투어 일정을 다시 잡겠다고 하지만 당초 예정된 일정이 막을 내린 상황에선 그렇다.
월드투어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국내 가수 중 처음 대규모 월드투어를 기획한 데다, 아시아를 돌고 하와이를 경유해 미국 본토까지 입성한다는 전략은 비가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
실제 지난해 12월15~16일 서울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23~2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1월12~14일 홍콩, 1월21일 싱가포르, 1월27일 말레이시아, 3월10~11일 베트남, 3월31일 대만, 4월14일 호주, 5월25일 일본, 6월2~3일 태국 등 총 16회 공연은 순항했다.
스타엠 발표에 따르면 비 투어 총 관객수는 서울 1만6천 명(2회), 미국 라스베이거스 7천300명(2회), 홍콩 2만5천500명(3회), 싱가포르 6천 명(1회), 말레이시아 1만1천 명(1회), 베트남 3만6천 명(2회), 대만 1만9천500명(1회), 호주 6천800명(1회), 일본 3만8천 명(1회), 태국 2만3천700명(2회) 등 약 18만9천800명으로 집계됐다. 고무적인 성적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미국 본토 입성부터 투어가 암초에 부딪혔다. 미국에서 이름 ‘레인(Rain)’ 사용과 관련해 법적 소송에 휘말리며 6월 펼칠 하와이ㆍ애틀랜타ㆍ뉴욕ㆍ샌프란시스코 공연이 취소됐다. 그간의 공연 취소로 속병을 앓은 비는 LA가 유일하게 남은 미국 투어 지역인 데다, 한인 등 아시아계가 밀집해 있어 큰 의욕을 보였다. 2주 전 이곳에 입국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기자회견 등 프로모션에 열과 성을 다했다.
안타깝게도 LA 공연 취소 사태는 비의 월드투어가 갖고 있던 많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월드투어 주관사인 스타엠은 경험이 없는 현지 공연기획사(V2B글로벌)가 무대ㆍ조명ㆍ음향을 설치할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스테이플스 센터가 LA시 전기 및 소방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공수해 간 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사전에 V2B글로벌이 이 같은 정보를 주지 않아 결국 공연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공연 제작 경험이 없다고 인정한 V2B글로벌은 무대 설치도 못하는 등 결정적인 진행상의 문제를 야기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스타엠도 해외 각지에서 공연을 진행할 업체 선정 등에 관여하는 전반적인 관리ㆍ감독자라는 점에서 부실 공연기획사를 선택한 책임은 회피할 수 없다.
스타엠의 이인광 대표는 비의 월드투어를 통해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며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 정보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대규모 공연을 펼칠 자금력과 경험이 없는 업체와 손을 잡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또 월드투어 기간을 묶어둔 것도 문제였다. 기간에 얽매여 세팅하다보니 물리적인 시간도 촉박했다고 말했다.
국내 공연업계 전문가들도 비의 사례를 보며 전반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토로했다.
한 공연기획사 대표는 현지 공연업계에 대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며 현지 수요를 고려할 때 현지 공연 업체들은 공연 판권이나 가수의 개런티가 비싸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돈은 좀 있지만 경험이 없는 한국계 프로모터가 주로 뛰어들고 이들과 손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연기획자는 최근에도 한 가수의 미국 공연이 기획 중 조용히 취소된 바 있다며 한국계 프로모터가 흥행성 수익을 위해 가수에게 비싼 개런티를 지불하며 공연 계약을 했지만 협찬을 따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티켓 예매도 저조하자 결국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에서 결국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비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해외 각지에서 날아온 비의 팬들이다. 휴가를 내고 미국을 찾은 아시아권 팬들의 허탈감은 누가 보상할까.
또 해외 언론에도 웃음거리가 됐다. LA 타임스는 비의 공연 당일, ‘세계 정상을 향해’란 제목 아래 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아시아의 저스틴 팀버레이크’이며 아시아 지역의 성과도 첨가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비의 공연은 취소됐다.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코미디인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