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형전 스님/보리사 주지
살다보면 정말 희한한 일들이 많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가사의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세상보다 더 불가사의하게 돌아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불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편이다. 원래 내가 세웠던 원이 문자반야를 통해서 부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보다 보편성을 가지고 보다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 다가가려면 일반적인 도구가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부처님 말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불교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때 부친의 손에 끌려 사찰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부친은 그때부터 나를 부처님의 제자로 맡기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친의 선택이기 보다는 나의 선택이고 인생길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좋든 싫든 어떠한 힘에 이끌려가면서 살게 된다. 모든 것이 힘의 작용이다. 만유인력뿐 아니라, 계정혜의 힘도 그렇고, 복력과 업보력도 그렇다!
범부중생들은 복력과 업보력이 적당히 교차되어 살아가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운이 비색해지면 귀에 말뚝을 박는 것을 알았다. 즉 평소에 잘 듣던 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고집대로 망쳐가는 것을 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몇십 세대가 되는 신도들에게 똑같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래서? 한정적인 신도들에게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느 불자는 내가 그 불자만을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를 해달라, 내가 봐서는 황당하고 무리한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러나 범부중생의 속성상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문제는 스님이 다 알아서 기도도 해주고 대신 살아달란 것이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안되는 부분 아닌가? 자신은 부처님께 기도도 공양도,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끄떡하면 불평불만에 영험이 없다고 난리친다.
정업(定業)-즉 팔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업을 면하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사료되지만, 쉽게 피하가는 것도 안된다는 것이다. 즉 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운명에서 악업에 의한 업보력보다는 선업의 업보력에 의하여 인도되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십선업을 짓는 수 외엔 없다. 자신을 돌아보고 지혜를 수양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복력을 강화하는 수밖에는 어떤 요행도 없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요행이 통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일 뿐이다. 이번주에도 인과를 생각하면서 복을 짓는 한주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해본다. 부처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인과를 안다면,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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