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뒤를 이어 하버드대 진학
▶ 미 육군 동아시아 연락장교 되기위해 노력
자스민 조 육군 대위
지난달 펀치볼 국립묘지에서 열린 6.25 발발 57주년 참전용사 추모식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행사 사회를 보았던 자스민 조 (사진 31 한국명 성아)미 육군 대위를 만나 보았다.
시애클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조 대위는 군인인 어머니 (서진규)를 따라 생후 9개월 때 부터 미국 버지니아, 로스캐롤라이나, 캘리포니아, 보스톤과 한국, 독일,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조 대위의 어머니는 하버드대 출신의 미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서진규씨로 성공한 이민자로 한국에서도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조 대위의 어머니는 1948년 경남 동래군의 한 어촌에서 태어나 제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풍문여고를 졸업했다.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다가 1971년 미국 가정집에 식모살이하러 단신으로 도미했다.
결혼한 이듬해인 1976년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해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 근무했다. 1990년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학자의 길을 함께 걷다가 1997년 소령으로 예편했다. 2006년 6월 하버드대 대학원(국제외교사 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씨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는 책을 쓰기도 했다.
‘모전여전’이란 말 그대로 조 대위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영향 못지않게 학비와 용돈, 졸업후 일자리도 보장되어 있다는 매력에 끌려 주저없이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전한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연구와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다. 하버드대 3-4학년때는 서울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가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시절 ROTC에 입대해 2000년 6월 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다.
조 대위는 텍사스 엘파소에서 7개월 훈련을 마치고 한국 오산과 군산에서 각각 1년씩 첫 근무를 시작했다. 그 후 텍사스 엘파소에서 중대장 생활 2년 6개월을 마치고 2005년 12월부터 하와이 포트 쉐터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하와이에서는 육군 소속으로 미사일 관련 일을 한다고 한다.
조 장교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재학중에도 여름방학이면 일본 정치인 사무실과 오사카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조 장교는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 3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조 대위는 성격도 활발해 자신이 성장기를 보냈던 어머니의 부임지 곳곳에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가 있다고 한다. 어린시절 다양한 생활환경 변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보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환경을 즐겼다는 조 대위는 취미생활 역시 활동적이다.
스쿠버 다이빙과 스카이 다이빙을 즐기고 수영도 좋아한다고.
이라크전이 한창인 요즈음 만약 이라크에 가야한다면... 이라는 질문에 “군인으로서 각오는 되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장교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묻는 질문에는 “17-45세 연령대 남자 85명의 엄마 역할을 한 중대장 시절”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동안은 미사일 관련일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미 육군 동아시아 연락장교가 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정부에서 일하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밝혔다.
<오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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