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잘 알려진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머리 글이다. 그는 동면상태에서 깨어나는 4월을 잔인한 달로 비유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잔인한 달은 4월이 아니다. 7월이다. 1789년 7월14일 파리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점령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봉건제 폐지를 요구하는 상드마 광장(에펠탑 앞) 데모에서 시민학살이 자행된 것도 7월이다.
혁명의 주도세력인 로베스 삐에르는 루이 16세를 처형하느냐 마느냐가 논란이 되자 국민의회에 나가 “수만명의 국민들이 생명을 잃는 비극을 막기 위해 그는 죽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루이 16세는 기요틴에 올라 목이 잘리기 전 “아들아. 이 사람들에게 절대 보복하지 말아라”라는 유언을 남겨 대조를 이루었다.
혁명이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공포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자코뱅당의 마라와 로베스 삐에르, 당통의 주장이었다. 결국 혁명을 찬성하던 온건파 롤랑 부인도 자코뱅당의 공포정치에 반대의견을 보이다가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아, 자유여, 그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는가”라는 롤랑 부인의 탄식은 오늘날 프랑스 혁명사의 명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혁명은 창조를 위한 파괴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창조를 위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피는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혁명의 주체인 로베스 삐에르와 당통도 교수대에 올랐다. 당통은 “차라리 가난한 어부로 일생을 보낼 것을”이라고 한숨지으며 “나의 목이 떨어지면 만인에게 보여주어라. 내 목은 보여줄 가치가 있다”고 울부짖었다. 로베스 삐에르는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 그는 재판이 혁명과업의 장애물이 된다 하여 반혁명죄는 재판 없이 사형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그 자신이 바로 이 법에 의해 체포 나흘만에 단두대에 올랐다.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은 수천명을 기요틴 사형시킨 극좌세력의 보스 ‘마라’다. 그는 공포의 상징이었으며 이상한 피부병 때문에 항상 목욕탕 물속에서 서류를 결재해야 했다. 어느 날 노르망디의 반혁명분자 명단을 제공하겠다는 25세의 미인을 접견하다가 목욕탕 안에서 그녀가 빼든 칼에 무참히 난자당해 죽었다. 이 여성이 후일 보수세력으로부터 성녀 대우를 받은 ‘샬롯 코르다’이다. 그녀는 1793년 7월17일 사형 당하면서 “나는 10만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라고 로베스 삐에르를 빗대 침착하게 말했다.
세계 혁명사상 프랑스 혁명처럼 큰 혁명이 없다. 봉건제를 무너뜨렸으며 군주전제정치를 민주공화정치로 바꾸어 놓은 역사의 장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혁명,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보다 더 의미가 깊은 혁명이다. 결국 프랑스 혁명이 보여준 것은 과격한 개혁이나 혁명은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약 2만명)에 보내지는 바람에 공포정치에 질린 국민들이 마침내 나폴레옹의 군사 쿠데타를 환영하기에 이른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도 7월이다. 프랑스 역사에서는 7월만큼 잔인한 달이 없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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