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54주년, 한국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칸소 주도 리틀락 북쪽에 거주하는 금년 82세의 A. W. 버스베아(Busbea)는 한국전 개전초기인 1950년 11월27일 중공군 제3야전군 주력 6개사단 약 10만명에 포위되어 혹한과 싸우면서 장진호(Chosin Reservoir)에서 흥남까지 후퇴했던 그 당시 전우들의 죽음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 당시 해병1사단 소속으로 장진호에 주둔해 있던 2만명의 해병용사들은 장벽에 가로 막혔다. 영하 30도의 강추위와 1미터 이상의 폭설속에서 엄청난 수의 중공군을 맞아 총구가 뻘겋게 달아 오를 때까지 방아쇄를 당겼다.
밀려오는 중공군을 맞아 전우들은 전장에서 산화했는가 하면 전투중 입은 부상으로 눈속에서 동사하고 말았다. 거의 6,000명의 전우들이 희생당한 최악의 전투였다. 이러한 악조건을 뚫고 사선을 넘어 흥남까지 철수했던 해병1사단 용사들의 한국사랑은 누구보다도 남다르다. 장진호 참전용사(Chosin Few)란 이름으로 미국내 국립묘지가 있는 곳마다 비문을 새겨 해마다 이를 기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전은 3만6,940명의 희생자와 8,000여 실종자를 낸 값비싼 대가를 치른 잊을 수 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은 미 해병1사단 용사들의 장진호 전투를 기념 이지스 함을 장진함(Chosin)이라 명명한 바있다.
<정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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