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들어있는 8월을 맞으면 짜릿한 전류가 온몸을 전율케 한다.
올해 92세인 우리 엄마는 광복절만 되면 목회자였던 외할아버지가 주일 예배시간에 젊은 일본순사로부터 멱살 잡혀 강단 아래로 끌려나와 전 교인들 앞에서 뺨 맞던 일이며 우리 아버지와 쫓겨 다니며 겪었던 고생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지금도 부들부들 떠신다.
그 당시 의식이 있거나 교육을 받은 조선인이면 그런 분하고 끔찍한 일들을 늘 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이 달만이라도 순교자들과 독립유공자들, 그리고 나라 잃은 까닭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어진 백성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달이어야 한다. 특히 종군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온갖 치욕과 학대를 당하고도 지금까지 산 증인으로 살아있는 그 분들에게 깊은 위로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또래 친구들은 섬겨야 하는 웃어른들과 대접받지 못하는 자식들 사이, 샌드위치 세대라며 불만하지만 나는 일제의 탄압과 만행을 피해 일제 말엽에 태어난 것에 늘 감사한다.
지난번 동경에 갔을 때 그곳에서 30년을 문학 활동을 하며 지금은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왕수영 시인을 만났다. 그때 “일본인들은 도대체 종군위안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고 물었다. 왕 시인의 이웃 일본인들의 반응은 “ 왜 한국인들은 걸핏하면 종군위안부 말을 꺼내느냐 지긋지긋하다”라는 반응이란다. 일본인 모두의 생각은 아니지만.
그 말은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종군위안부에 대한 단호한 대응 없이 한,일 회담 때나 3.1절 같은 때 한번 씩 짚어 가는 지난 얘기로 들려진다는 뜻이 아닐까. 피해 당국인 한국이 질질 끌어왔던 종군위안부 문제가 일본인 3세 혼다 하원의원이 위안부 결의안(HR 121)을 미 연방하원에 발의해 만장일치로 연방하원에서 통과되었다.
혼다 의원을 비롯해서 이용수 할머니와 숨은 미주한인 봉사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기뻤지만 왠지 통쾌하지는 않았다. 7년 전에도 종군위안부에 관한 영화를 만든 김대실 감독이 뉴욕 퀸즈 도서관에서 ‘침묵’이라는 영화를 상영할 때 영화 주인공 종군위안부였던 황씨 할머니의 증언을 나도 들었지만 몇몇 사람의 울분으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결국 모든 한국어 언론에서 몇 초 뉴스거리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그리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상상외로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라는 혼다 의원의 말뜻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두 여중학생의 미군에 의한 사고 사 분노로 반미 촛불시위로 번져 정권까지 뒤 짚었고 자기 이익을 위한 노조들의 극렬한 투쟁의 명수들, 축구경기 때면 하나로 열광하는 응원 단결, 그 뿐인가 해외까지 파견되는 시위대들도 있어 한국은 그야말로 자칭 경제대국이며 세계적으로 시위문화 1등 국민이고, 돈 버는 일과 건강을 위해서는 안하는 짓 못할 일이 없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이 민족 자존심이며 권리행사이고 우월감이며 단결인가.
나와 왕 시인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간 혼자 못 해 본 짓이나 하자며 우리 가곡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낯 선 고속도로를 무작정 달렸다. 다음 날 나리타공항 면세점에서 샤넬 화장품 하나를 구입했는데 영수증을 보니 윈도 정가와 달랐다. 점원에게 호통을 쳐 사과 받았지만 하찮은 일에 민족감정까지 포함시켜 내 마음이 아직 해방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그 비겁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정한 해방은 어두운 역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미 의회에서 통과된 HR 121 결의안을 계기로 일본으로부터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받고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뭐든지 잘되면 한국국민들의 우월성의 소산이고 잘못되면 미국이나 타민족 탓으로 돌리는 원망은 우리 스스로 얽매이는 자격지심이다. 진정한 마음의 해방은 반성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일본도 이제 지난 과오를 용서받고 국제적 범죄에서 자유스러워져야 한다.
이성호 / 시인· R. 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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