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하면 ‘쇄국정치’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올라온 미국상선 제너럴 셔만호를 불문곡직하고 불살랐다.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군대와 미 해군도 본때 있게 격퇴했다. 그러나 그의 옹고집은 물밀듯 침투하는 외세를 막지 못했고 조선왕조는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된 끝에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제물이 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19세기 중엽의 세계 추세였는지,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의 이곳 서북미도 당시 조선왕조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금의 알카이 비치 일원에 정착해 있던 스쿠아미시 인디언 부족이 총칼을 앞세우고 밀려오는 백인 이주민들에게 조상전래의 문전옥답을 빼앗기고 스캐짓 반도의 궁색한 보호지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당시 스쿠아미시 부족의 추장은 대원군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우호적이고 진취적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동네 앞바다에 영국 탐험선 디스커버리호가 뜬 것을 목격하고 머지않아 세상이 바뀔 것임을 감지했다. 인디언의 통나무 카누보다 몇 백배 큰 범선과 특히, 그 배에 장착된 대포의 엄청난 화력에 기가 질렸다. 그는 아버지를 이어 추장이 되자 침략자들의 정착을 앞장서 도와줬으며 스스로 천주교로 귀화해 ‘노아’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그 추장의 본디 이름은 시알트(Sealth 혹은 See-Yahth)였지만 그의 도움을 받은 백인 정착민들이 발음하기 쉽게 멋대로 시애틀(Seattle)이라고 불렀다. 원주민들로부터 ‘알카이!(‘가까운 미래에 만나자’)라는 환영인사를 듣고 ‘알카이 포인트’로 명명했던 마을 이름도 덩달아 시애틀로 바뀌었다. 그 동네가 150여년 만에 서북미 최대도시로 우뚝 섰다.
시애틀은 백인들로부터 ‘거인’이라는 별명을 들었을 정도로 기골이 장대했다. 목소리도 우렁차서 그의 연설이 반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다고 했다. 백인들에 영합한 겁쟁이였다는 일부의 비난과 달리 그는 완벽한 인디언 전사였다. 다른 원주민 부족의 침공을 막아냈고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타 지역 원주민 부락을 침공해 포로를 잡아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애틀은 뛰어난 연설가였다. 그가 백인들에게 행한 연설 가운데 “당신들의 종교는 돌 판에 새겨졌지만 우리 종교는 마음 판에 새겨졌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 대지는 우리의 일부” “바다의 조수처럼 부족 뒤에 부족이, 민족 뒤에 민족이 온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므로 애석해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구절은 요즘도 명언으로 곧잘 인용된다.
스쿠아미시 추장의 아들 겸 두와미시 추장의 손자로 1786년 태어나 부족 최대의 시련기를 감당한 시애틀은 1855년 미국정부의 강요로 ‘엘리엇 항구 조약’에 서명, 조상대대로 물려져 온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바다건너 킷샙반도의 보호지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1866년 6월7일 생을 마감했다. 대원군이 셔만 호를 불사른 바로 그 해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팔을 들어 정착자들을 환영하는 모습의 실물대 동상으로 시애틀센터에 재현돼 시애틀이 왜 시애틀인가를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다.
이번 주말 베인브리지 섬에 연한 킷샙반도의 스쿠아미시 부족 기념묘지에서 ‘시애틀 추장 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8월 셋째 주말에 열리는 이 축제엔 원근각지의 원주민 부족이 카누를 타고 몰려와 전통 춤 ‘파우와우’를 추고 연어구이를 즐기며 시애틀 추장을 기린다.
그러나, 이들의 축제는 새로운 정착민들이 역시 이번 주말 다운타운에서 벌이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100주년 잔치와는 비교가 안 된다. 축제라기보다는 1년에 한번 모여 서로간의 생존을 확인하면서 살만했던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한풀이 행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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