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디오>가 내게 선물해 준 살아남은 자의 슬픔
1.
내가,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이한열 열사 때문이었다.
시쳇말로 한대서 겨울을 지낸 우거지 상에 온갖 개폼은 다 잡은 채 나는, 1987년 난생 처음 대학문을 들어섰었다.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던 그 전 해 겨울엔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치사 당했고, 그 해 6월 9일엔 연세대생 이한열이 직격탄에 피격되었고, 내 생일이었던 7월 5일 새벽녁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의 대학가는 개점 폐업맞은 중국집처럼 텅 비어 있었다. 한창 문학입네, 예술입네하는 치명적 병증에 심신을 농락당하던 나는, 학우들이 시청으로, 명동성당으로 다 빠져나가버린 텅 빈 문리대 건물 옥상에 가끔식 홀로 올라가 최루탄 연기에 닭똥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백석의 시구를 읊조려 보았던 것이다. 나는 나 혼자만으로도 너무 힘겹고 너무 아득하였으니까.라고 말이다.
2.
사실, 나는 그때 ‘나 혼자만으로도 힘겹고 너무 아득한 세상’이 괴로워 홀로 문리대에 남겨지는 쪽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사는 게 말할 수 없이 두려웠다. 세상이 무서워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숨고만 싶을 뿐이었다. 한열을 통해 최루탄을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고, 전경의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져 병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살얼음판 같은 세상, 깨진 안경과 유리 파편 속을 홀로 뒹구는 더러운 운동화 짝들을 헤치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학교 뒷골목길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나의 비겁함이 부끄러워 몇 번이고 울었다. 그럼에도, 최루탄은 여전히 무서웠고, 일명 짭새라 불리우던 전경들의 제복이 죽도록 두려웠다.
3.
그리고 쭈볏쭈볏 무거운 마음으로 참가한 한열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한 문구를 발견했다. 아니, 그 문구가 나를 발견했고 내게로 왔다.
“나의 어린날의 추억, 광주 사태가 끝난 후 6월 초순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자연을 만끽했고 고풍의 문화재에 심취했다. 친구들과 찍은 몇 장의 사진이 있을 뿐, 사회의 외곽지대에서, 무풍지대에서 스스로 망각한 채 살아왔던 지난날이 부끄럽다.(‘1987년 분단 42년 피맺힌 2월’ 중에서)”
아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꿈꾸며 살아왔더란 말인가.
그저 나보다 두어살 연상일 뿐인 한열도 나도, 사랑도, 공부도, 인생도 빡쎄게 살아 보고파했던 인생파 이팔 청춘의 젊은이일 뿐이었던 것을.
나는 그가 말하고 있는 광주에 대해 알고 싶어 졌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던 80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고, ‘들장미 소녀 캔디’에 매혹되어 있었고, 어항을 빨리 사오지 않는다고 내게 손바닥에 매를 친 여선생이 죽도록 싫어 전학가고 싶었고, 나는 죽어도 선생님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고, 그리고, 그리고 말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에게 어항을 사달라고 말하지 않고 똥고집을 피우던 철없는 아이였다.
87년 6월, 그의 정신은 그후 무럭무럭 성장하였으나,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6학년생에 머물러 있음에 부끄러웠고, 나는 나의 그 결여의 중심을 파헤치고 싶었다.
4.
그리하여 그 다음날 밤, 일명 ‘광주비디오’라는 암호의 질 나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던 해방광장의 한 구석으로 슬며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통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순간을 목도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너무도 달랐던 그 장면들, 영화 속인양 군인들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고함을 치고 , 총을 쏘고, 칼로 찌르고 베어 사람들을 죽였고, 여자와 어린이와 노인들은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한 없이 비가 내리고 울렁이고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튀어나오는 목소리와 비명들 속에 드러누운 시체들은 현실감을 상실한 채, 오래된 영화 속의 그림처럼 둥실 떠 올랐다.
어디선가 억눌린 흐느낌이 새어 나왔고, 누군가가 선창하기 시작한 애국가가 조용히 흘렀다.
그러나, 나는 비디오 속 한 사나이의 눈빛에 영혼을 사로잡힌 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많은 시체들 속에 엎어져 있던 한 남자가 고개를 들어 눈부신 봄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총상으로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계엄군의 총칼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쓰려져 있던 그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려다 보는 푸르른 봄하늘, 봄빛을 투과하여 그의 눈빛이 쫓고 있던 그 실체를 잠시 본 듯했다.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피안의 세계에 닿아 있던 그의 동공 속에 어린 영혼들의 날개짓 또한 함께 본 듯했다.
그것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던 자의 홀가분함인 동시에 주검들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5.
이후로도 투사가 되지도 못할 위인임을 나 자신 잘 알고 있었지만,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의 눈빛에 내 삶의 한 자락을 이미 내어주고 말았다는 것을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내안에 잠복한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했고, 최루탄에 맞거나 경찰에 잡혀가 고문당하거나 총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있는 나 자신의 운 좋음에 감사해야 했고, 더불어 비겁함에 부끄러워 해야 했다.
6.
영화 <화려한 휴가>는 내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새삼 일깨운다. 영화 속 남자들과 여자들은 너무나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 그들은 그들이 왜 쫓기고 쫓기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간다.
김상경의 통곡과 이요원의 울부짖음과 시체를 연기하는 엑스트라들의 육체를 통해, 나는 망연자실 한없이 부끄러운 청춘의 시절, 그 매웁한 최루탄 연기 속에 고독하게 서있는 20대로 돌아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많이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건, 단지 영화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명색이 평론가인 나는 영화 앞에 언제나 냉정하려 애쓰므로, 영화는 오히려, 대학 시절 보았던 사정 없이 비내리는 ‘광주’ 비디오보다 백배쯤은 못하므로, 그리고 김상경이나 이요원이 연기한 고독과 슬픔과 분노와 고통 또한 광주의 그들이 가슴에 품었던 그것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러나, 아는가.
‘광주’라는 말만 꺼내도 빨갱이, 불순분자 취급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을, 광주항쟁 진상규명이 학생운동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무살의 그 시절, 전경들의 최루탄과 지랄탄 공세 속에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가며 보던 30분짜리 ‘광주’ 비디오가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불순세력이 조작한 불온 유인물로 취급되던 말같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6.
이제 속절 없이 마흔이 되어, 노새처럼 쇠약해진 심신과 그만큼 더 약아지고 세상 앞에 비루해진 나의 삶 앞에 20년 전의 불온 비디오 ‘광주’와 영화 <화려한 휴가>는 격세의 지감으로,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집채처럼 무거운 생활 앞에 콩알만큼 쪼그라든 양심을 일깨우는 하나의 외침으로 다가온다.
7.
기실, 역사의 수레 바퀴 아래 자유로운 자가 누가 있을까. 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 모든 폭력과 부조리 앞에 개개인으로서의 인간은 그저 무력하기만 할 뿐임을 우리는 잘 안다.
죽인 자나 운좋게 살아남은 자 모두 죽은 자들만치 환하게 빛나지 못함은 그들의 가슴 속에 웅덩이처럼 검게 고여 있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때문이 아니겠는가.
살아남은 자라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그 슬픔을 노새처럼 비루하게 등에 지고 한 평생을 살아가야 하리. 죽은 자들에 대한 찬란한 기억과 삶의 비루함과 역사의 탈을 쓰고 갈수록 경박해져가는 세속조차도 말이다.
나는, 이후로, 다시, 그의 눈길이, 광주비디오 속의 그가 바라보던 그 봄하늘이 내 가슴을 후며파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들어야 할 것같은 생각이 든다.
<정영화 기자> 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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