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23)
▶ 인천과 하와이를 뜻하는 인하공과대학
한국동란 당시 이승만은 과학기술교육과 외국어교육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할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1953년 7월 31일 외국어대학의 설립을 문교부에 지시하여 이를 국립대학으로 추진하였다.
마침 대학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던 한국육영회의 계획과 결합되어 1954년 1월 18일에 정부의 보조금으로 재단을 인가함으로 한국외국어대학이 1954년 4월 20일에 개교하였다.
한편, 그가 구상하고 있던 과학기술자 양성을 위한 공과대학의 설립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의 기지 판매에 관한 보고를 받은 후에 실천에 옮겨지게 되었다.
학교 이름을 구상 초기의 이름인 한국과 하와이를 뜻한 ‘한하’에서 인천과 하와이를 뜻하는 ‘인하’로 바꾸었다.
그러나 한인기독학원 기지 방매금은 인하공대로 곧 전해지지 않았고, 인하공대 건축이 확실해 질 때에 보내려고 호놀룰루 은행에 예치하여 이자가 많이 모아지기를 기대하였다.
한인기독학원 이사회 (이사장 강영복, 서기 필립 홍, Chester Livingston, John L. Dunstan, Leslie Scott, Mrs. Frank Midkiff, 최성대, 양유찬, 김영기)는 1954년 1월 29일에 특별회의를 소집하고 폐교된 한인기독학원을 해체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3월 9일에는 인하대학 기금을 한인기독학원 설립자 이승만에게 보낼 것을 결정하고, 우선 이 기금을 주 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에게 양도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그 결과 한인기독학원은 1954년 4월 23일에 정식으로 해체되었다.
1954년 4월 24일에 인하공과대학이 개교하자, 하와이 교포들은 하와이 인하후원회를 설립하고 인하공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냈다.
인하후원회가 조직된 것은 하와이 한인이민 50주년 기념을 위하여 1953년 11월 13일에 도착한 함태영 부통령이 70세 이상 된 연로한 이들을 위하여 오찬을 베푼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께서 “50 성상을 하와이에서 고국을 그리는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의 독립사업을 위하여 힘썼고 또 하와이 한인사회를 발전시킨 노인들에게 공의를 표한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인하대학을 중심하여 하와이 한인이민역사와 한국 사이에 영원한 기념이 되도록 하자는 이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이에 한인들이 예전에 기독학원 후원회가 있어 기독학원을 후원했던 것처럼, 인하대학 후원회를 결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뜻이 이 대통령에게 전달되었고, 그 후 이 대통령은 인하대학 후원회에 대하여 종종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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