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안 가 봤으니 좋은지, 어쩐지 몰라요. 그저 두어 시간 기차 타 본다는 기분으로 한번 갑시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분의 제의로 우리 내외는 모처럼 오션사이드로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유니언 역에서 남행 열차로 갈아타고 오션사이드로 향했다. 기차는 두어 시간 남짓 달려 메트로링크 종착역이기도 한 오션사이드에 닿았다. 역에서 빠져 나오자 금방 바다가 코앞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오션사이드가 LA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아름답고 한가한 백사장이 우리들의 차지가 된 모양이다. 바다와 인간, 비치파라솔, 하얀 모래, 수평선, 갈매기 등등 모든 것이 아름답고 한적한 바닷가 풍경을 연출하는 가운데 우리도 거기 한몫 끼어 몸을 내 맡겼다.
마침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거리 한 블럭에서 벼룩시장이 열려 점심을 찾아 나섰다가 또 다른 재미거리를 만났다. 거기서 그리스계 한 가족이 만들어 파는 케밥으로 푸짐한 점심을 든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점심을 먹고 피어에 오르니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낚시꾼들이 낚시 줄을 물밑으로 드리워 놓곤 무심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서있다. 어떤 소년은 싱크대에서 잡은 상어를 씻고 있는데 구경꾼들 앞에서 자랑을 하고 싶은지 씻고 또 씻는다. 그날 상어를 낚은 그 소년의 벅찬 감격은 일생을 통하여 잊혀 지지 않으리라.
모래사장 걷기가 건강에 좋다기에 우리는 맨발로 바지를 걷고 해변 가 모래사장을 천천히 걸었다. 깨끗하고 따끈한 모래알의 감촉을 기분 좋게 발바닥에 느끼며 문득 얼마 전 한국 TV 화면에 비친 뉴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바다가 아니라 공중목욕탕 같은 물 속에서 머리만 보이는 많은 사람들, 인파로 바글거리는 해변가에 서서 “사람들이 통닭을 사먹고 닭 뼈를 모래 속에 마구 파묻어 버려 닭 뼈에 발바닥이 찔려 마음놓고 걸을 수가 없어요.” TV 마이크에 대고 어느 여인이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긴 모래사장도 곱고 발끝에 걸리는 것도 없다.
어쩌다 시선을 돌려 바다 반대쪽을 바라보니 그제서야 해변가를 따라 아름다운 콘도, 방갈로들이 방벽처럼 둘러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우리도 이런 곳에다 집 하나 마련하여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이곳에 일년 열두 달을 내리 산다면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올 여름 더워서 샌타모니카에 자주 갔었는데 이곳에 와보니 샌타모니카는 사람이 너무 많고 지저분하여 앞으론 전에 느끼던 것처럼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럼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다시 한 번 이곳에 와요.” “아니, 이곳은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좋을 것 같네요.” 우리들의 대화는 벌써 떠나온 오션사이드 바닷가에 대한 아쉬움으로 변했다.
집에서 아무 것도 아닌 일들에 부부간에 고집을 부리고 마음 상하고 집밖에서 사소한 일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등 왈가왈부하고 살다가 하루를 이렇게 순수한 자연 속에서 지내고 나니 그런 일들이 얼마나 가소롭고 무의미한 것인가 새삼 느껴진다. 그것도 왕복 기차 삯 12달러만 들이고 말이다. 지금 이순간 그 동안 쌓였던 아집과 편견의 찌꺼기들을 몰아내고 넉넉한 바다의 기로 채웠으니 새로운 삶이 시작 된 듯 기쁘다. 우리들의 기차여행은 수학여행 아닌 시니어 여행, 큰 기대 없이 무작정 떠난 기차여행에서 깨끗한 삶의 한 자락을 담아 온 보람이 크다.
배광자 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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