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을 모리와 함께’라는 책을 다시 읽었다. 10년 전에 처음 출판되어 4년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는 기록을 세운 아주 짤막한 책이다. 한 노령의 환자와 젊은 저널리스트가 함께 보낸 열 네 번의 ‘화요일’을 기록한 이야기이다. 고인이 된 주인공, 모리스 슈와르츠 교수를 빼고는 모두 현존하는 사람들이 실명으로 나오는 넌픽션이다.
저자인 미치 앨봄은 브랜다이스 대학시절 4년 동안 모리 슈와르츠 교수가 가르치는 학과는 빠짐없이 등록했다. 교수와 학생은 사회학과 교실 밖에서도 끝없이 토론하고, 농담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일까에 관해서 가르치고 배웠다. 그들은 정말 친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미치는 졸업을 했고 모리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TV 방송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리를 다시 보았을 때는 16년의 세월이 그들 사이에 흘러간 후였다.
NBC의 테드 카펠이 모리 슈와르츠가 앓고 있는 희귀한 병과 죽음에 임한 교수의 인생관을 묻는 특집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미치가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그는 출세하기에 바빴고 많은 돈을 벌어서 큰 집을 샀고 잘 나가는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얻었고 그 후광으로 베스트셀러 책도 몇 권 출판했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신문과 방송 일을 하던 미치는 바로 보스턴 행을 결심한다. 병상의 모리와 미치가 다시 만난 날이 우연히도 화요일이었고 그들은 옛날에도 언제나 화요일에 만났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한다.
“우리는 화요일의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마다 미치는 보스턴 행 비행기를 탔고 열네번째의 화요일에 두 친구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마지막 보는 작별의 키스를 한다. 모리는 그 토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하루 종일 책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 나는 누구에게도 책 읽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책을 읽으라고는 더욱이 말하지 않는다. 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는 자기 사연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감동과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화요일’을 읽고 나는 며칠 밤잠을 설쳤다. P은사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미치에게 모리가 있었듯이 내게도 나의 모리가 있었다.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나는 많은 주말을 선생님 댁에서 보냈다. 종교, 문학, 사랑에 관한 얘기들을 했다. 선생님은 집필중이신 원고나 번역물을 보여주셨고 단어나 문장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물어 그대로 반영하시곤 했다. 나에게 특강을 하신 셈이었다. 선생님은 깐깐하시고 영국 신사여서 제자들이 친하게 굴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친절하셨고 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다. P선생님은 나의 철없음을 상관치 않으시고 마음 깊은 곳에 묻힌 사적인 얘기도 들려주셨다. 젊은 날의 내 고민을 들어주셨고 그분의 수필처럼, 그분의 시처럼, 간결하고 아름다운 조언을 해 주셨다. 졸업 후 유학 올 때까지 나는 선생님께서 내게만 주신 많은 특강의 수혜자였다.
모리는 생의 마지막 즈음 미치에게 말했다. 나의 두 아들 외에 내게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면 바로 너였을 것이다라고. P선생님이 학과장에게 보낸 추천서에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딸에게 언니가 있었다면 나는 이 학생을 택했을 것이다”라고 쓰신 것을 나는 유학 후에야 알게 되었다.
참으로 오래 전 미국 여행중 버클리 우리들의 협소한 아파트에서 사흘을 묵어 가셨다. 나는 아이들과 직장 사이에서 정신없이 사느라 편지도 뜸해졌고 어쩌다 한국에 나가서야 전화를 드리거나 찾아뵐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최근에 전화를 넣었을 때 나의 모리, P선생님은 어느 대학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계셨다. 미치는 잃어버린 16년의 시간을 가슴 아파했다. 나는 그 보다 두배나 더 많은 시간을 잃었다.
송정원 /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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