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 황석영 지음
작가 황석영을 생각하면 어릴적 집에 있었던 ‘창비’ 영인본이 생각난다. 고교 시절 공부의 중압감에 눌려있던 나는 아마도 세일즈맨의 집요한 강요에 못이겨 들여놓았을 시커먼 하드커버에 금박으로 창작과 비평이라고 쓴 좀 이상한 책을 집어 든 적이 적지 않았다.
평론과 시론, 문학작품이 자유롭게 얽혀있는 좀 수상한 매력이 있는 잡지 속에서 독해 능력이 안되는 평론 시론은 건너띄고 소설만 모조리 골라 읽었다. 그중에 황석영의 ‘객지’가 있었고, 또 ‘한씨 연대기’도 있었다. 벌써 30년전 일이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광주민주화 운동, 남북정상회담, 독일 통일, 9.11 사건등 국내외적으로도 엄청난 일들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세계화된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나는 꿈도 꾸지 않았던 미국에 있다.)
황석영의 신간 ‘바리데기’는 30년도 더 넘은 세월 동안 우리 민족 나아가 세계인이 가진 고통을 온몸으로 껴안으려 했던 작가의 고난에 찬 인생 여정이 ‘바리’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체화된 듯하다. ‘바리데기’ 설화에서 차용한 인물인 주인공 바리는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부모에 의해 숲속에 버려지지만 풍산개 ‘흰둥이’가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 준다. 이후 심하게 앓고 난 뒤부터 바리는 영혼, 귀신, 짐승, 벙어리 등과도 소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 이후 두만강을 건너 연길로 또 대련으로 발마사지사가 되어 살아가지만 동료 부부의 빚 때문에 인신매매단에 팔려 밀항선을 타게 된다. 영국 런던에 도착한 바리는 네일살롱에 취직하고 건물을 관리하는 파키스탄인이자 무슬림인 ‘압둘’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알리’를 만나게 된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영혼들과 소통과 절망과 상처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바리의 여정은 21세기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소설은 결코 딱딱하거나 비관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슬픔을 담담하게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바리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여기에 황석영 소설의 미덕이 있는 듯 하다.
이형열(알라딘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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