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호목사 부부(오른쪽)가 아리조나 주 투산에 살며 원주민 선교를 후원하고 있는 김홍준(왼쪽)장로와 부인 박남옥(김장로 오른쪽)권사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선교사 안명호(57·PCUSA)목사.
안목사는 사우스 다코타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하다 지금은 아리조나 피닉스에서 인디언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있다.
1992년 도미해 중국선교사의 꿈을 가졌던 안 목사는 반드시 중국이 아니더라도 미국 내에도 반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다. 그 반기독교는 바로 아메리카 네티브 인디언 원주민들이다. 안목사는 ‘늑대와 함께 춤을’의 영화 배경에 나오는 다코타 원주민을 위해 그들을 섬기며 선교했다.
안목사는 “기독교 정신은 섬김이어야 한다. 그러니 선교도 섬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우다 다코타 파인 릿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10년 반 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인디언 미션 스쿨에서 3년간 음악선생도 했다. 이곳에서 인디언선교를 하던 3명의 선교사가 추방당했다. 미주내의 수많은 인디언보호구역 중에서도 사우스 다코다 인디언들이 제일 못 산다.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 인디언들과 함께 지내며 가장 많이 한 말이 ‘I am sorry’(미안합니다)였다.
이유는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미국은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말살하기 위해 말로 할 수 없는 정책들을 펼쳤고 나도 기독교인이자 한 목사이기 때문이었다. 인디언들은 그래서 미국인을 믿지 않고 기독교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기독교인 미국인을 한 번 만나면 땅이 없어지고 두 번 만나면 사람이 없어지고 세 번 만나면 커뮤니티가 없어진다’며 백인들을 전혀 신용하지 않고 있다. 사우스 다코타에 들어 간 후 처음부터 선교를 시작하지 않았다. 1년 9개월 동안 그들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에 접하기 위해 노력했다. 배우는 것 자체가 선교다.
그것은, 즉 배움의 목회(Learning Ministry)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바이블 스터디였다. 먼저 그들과 인간적인 감정교류를 가진 후에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인디언 담임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갔다. 담임목사는 젊었다. 그러나 부목사로 들어간 것은 현지인을 리더로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는 어떤 곳으로 가든지 선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목사는 “목회나 선교는 공격적인 목회 보다 수동적 목회(Passive Ministry)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로 성육신(聖肉身) 하심(빌립보 2장5-11절)은 수동성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죄인을 구원하려 선교사로 세상에 오신 예수다. 예수는 3년을 일하기 위해 30년을 배우셨다. 선교
사가 선교하러 간 그 지역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선교할 수 있는가. 선교지에 가자마자 ‘열중쉬어 차려’하는 식은 안 된다.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기다림의 목회(Waiting Ministry)요 선교다.
기다림의 선교와 목회는 처음엔 약해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다. 인디언선교를 하다 실패한 선교사들은 고백한다. 처음부터 공격적인 선교를 해서 그렇게 됐음을 그들은 시인한다. 나는 돈 쓰는 선교는 하지 않는다. 생활은 그저 먹고 살 정도면 된다. 인디언들은 그들이 우리가 가지고 간 선교가 좋다고 하면 땅도 내놓는다. 인디언들이 사는 곳에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구(Tool)가 될 수 있다. 그 하나님 나라란 모두가 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개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란 뜻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안 목사는 “미국은 인디언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보딩 스쿨(Boarding School)을 운영했다. 그 학교는 1879년부터 지난 2000년까지 운영됐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년이 있는 보딩 스쿨에 들어간 인디언 원주민 학생들은 가족들을 떠나 학교에서 기숙하고 배웠다. 그들은 보딩스쿨에 들아거면 첫날 머리를 깍이고 이름이 바뀌면서 미국인 선생들의 교육에 들어간다. 보딩 스쿨에 살면서 어쩌다 원주민어, 즉 인디언 말을 하면 바로 선생에게 불려가 하루 종일 비누로 입을 닦이는 고초를 겪어야 한다.
‘머리가 깍인 다음 그들은 바로 고문으로 들어간다’는 표현도 있다. 보딩 스쿨에서 견디다 못해 죽어 나가는 인디언 청년들도 많다. 학교 안 있는 무덤들이 그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제 보딩스쿨은 운영 안되지만 121년 간의 보딩스쿨운영으로 인해 인디언들은 그들의 고유언어를 잃어버렸고 이제는 그들도 영어를 보편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인디언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며 인디언 언어를 배워 그들의 언어로 찬송가를 번역해
함께 부른 적도 있다. 이렇게 하는 동안 인디언들과 하나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그들에게 전파하고 그들도 하나님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 앞으로 인디언 선교는 낙관적이다. 공격적인 선교가 아닌 수동적 선교로 그들의 문화와 아픔을 알고 그들
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들어가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나누며 복음을 전할 때 인디언들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1950년 태어난 안 목사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장로회신학대학원(통합)에 들어가 공부하는 중 폐 수술을 하여 절반이 잘려나가는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원을 졸업 한 후 경주에 내려가 전도사로 일하던 안 목사는 여러명의 전도사들이 쫓겨난 동네의 주민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섬기며 목회하여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명도 추방당한 목회자가 없다고 한다. 안 목사는 92년 4월17일, L.A. 4.29폭동이 일어나기 전 세계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초빙돼 미국에 들어왔고 5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원주민선교를 하기 위해 교회를 떠났다. 현재 소속은 미국장로교(PCUSA)로 교단 안에 두 명의 한인 선교사가 있다. 현재 안옥남(57)사모와의 사이에 출가한 딸 모니카(28)와 결혼한 아들 피터(26)를 두고 있으며 아리조나 주 첸들러에 거주하고 있다.
원주민 선교에 후원 동참을 원하는 교인이나 교회는 DM(Dagota Presbytery Dana Ministry P.O.Box 11958 Chandler, AZ 85248 로 연락하면 된다. 전화문의: 480-766-2557. E-mail: dananiss@hotmail.com
<김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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