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사고를 취재하다 보면 피해자나 용의자의 성씨를 통해 일차적으로 한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김, 이, 박씨 정도면 한인이라고 100% 확신 했다가는 오보하기 십상이다.
얼마 전 롱비치에서 성이 Kim씨인 남성, 즉 ‘김씨’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잠시 긴장했으나 캄보디아계로 밝혀져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캄보디아에는 Kim씨가 흔한 성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Park씨 성을 가진 부부가 피사체로 발견돼 바짝 긴장을 하고 취재를 했더니 ‘백인 박씨 부부’로 밝혀졌다. Park씨는 원래 영국계 성으로 아직도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가면 영국계 미국인 가운데 Park씨가 많다고 한다. Lee씨는 흑인에게는 매우 흔한 성이고 수많은 중국계 이씨들이 있기 때문에 first name을 확인하기 전까지 한인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경찰국이나 소방국 또는 검시국은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의 인종 정도는 분류해도 국적이나 세부 인종은 인종차별 등 예민한 사안이 대두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언론에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름만 가지고 피해자나 용의자가 한인인지 밝혀내는 것은 기자의 취재력에 달려있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성씨인 김, 이, 박씨 외에도 기자들을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성씨들도 많다. 얼마 전 Jung씨 성을 가진 용의자의 이름이 거론됐다. 당연히 ‘정씨’라고 생각하고 취재를 해보니 스위스계 ‘융씨’ 였다. 아마도 유명한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의 후손인 모양이다. Yang씨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위스콘신주에서 Yang씨가 전 직장 동료를 총격 살해하고 자살해 “또 한인 총격 사건?”하며 놀라서 확인해 봤더니 라오스계 ‘양씨’로 밝혀져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선배기자의 말을 듣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름이 한인인지 확실하지 않아도 혐의가 ‘한인스러워서’ 손쉽게 한인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매춘이나 가정폭력의 경우는 묻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먼저 한인이라고 알려줘서 괜히 창피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타인종 여성이 한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 성을 따르기도 하고 입양아들의 경우에는 한국 성씨가 아니어서 깊숙이 취재를 하기 전까지는 한인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혼혈 3-4세의 경우에는 어디 까지를 한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기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논의가 벌어지기도 한다.
기자가 성씨만 가지고 한인 여부를 확인하다 낭패를 보는 것은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존속관계로만 한 개인의 신상과 인종을 규정하려는 의도가 다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미국 사회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인’을 한 개인을 단편적으로 규정하는 명사로 쓰기보다는 한 개인의 배경을 설명하는 형용사 쓴다면 기자의 고민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연신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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