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오페라가 펼치는 ‘삼손과 데릴라’를 보고 있자니 ‘사랑은 잠깐이요, 고통은 영원하다’는 말이 더욱 더 실감이 난다. 신의 선택 받은 삼손…. 힘으로는 당할 자가 없지만 사랑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하다. 관능적인 이방 여인 데릴라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삼손…. 그러나 아름다운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가 울릴 때만은 신도 자아도 없다. 오직 순간에 불 타고 순간에 사라지는 사랑의 열망만이 영원의 불꽃으로 화하여 쓸쓸하고 허무한 인생의 단면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킬 뿐이다. 비록 삼손을 유혹하는 노래에 불과하지만 로맨틱 지상주의를 느끼게 하는 이 아리아가 없다면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아마도 지금껏 살아남지 못 했을런지 모른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아침의 입맞춤에 눈 뜨는 꽃처럼/ 광활한 기쁨이 나를 둘러싸고/ 이제는 다시 눈물짓지 않도록/ 변치않는 사랑, 다정한 말, 진실어린 맹세를 들려 주시길/ …오 나의 사랑, 나의 사람 삼손이여….
마치 먼 남쪽나라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인 양… 아늑하고 실버들처럼 감미로운 이 노래는 어딘가 진실에 차 있으면서도 애수마저 느끼게 하는 사랑의 찬가로 가슴을 적신다. 데릴라가 삼손을 정말로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저 유혹에 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페라에 등장하는 노래만큼은 너무도 애틋하면서도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삼손은 구약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실제인물로 당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일천명을 쳐 죽였다는 장사였다. 신의 은총을 받은 나실인으로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던 삼손은 요녀 데릴라의 유혹에 빠져 머리를 잘린 뒤 힘을 상실하고 눈마저 뽑힌 채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다. 마지막 블레셋 사원에서 괴력을 다시 찾은 삼손이 기둥을 무너뜨리고 3천명을 몰살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SF오페라의 개막작품으로 공연하고 있는 ‘삼손과 데릴라’는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난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무대가 스펙터클하고 웅장할 뿐더러 발레 등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삼손과 데릴라’는 2001년에도 무대에 올려져 호평을 받았는데 이는 데릴라 역의 소프라노 올가 보로디나 때문이었다. 당시 ‘삼손과 데릴라’는 소프라노의 윤택한 목소리로 인하여 무대가 화려하게 살아났으며 그 해 가장 큰 성공작으로 꼽히는 절찬을 받은 바 있다. 당시의 성공에 고무된 때문인지 SF오페라는 이번 시즌에 ‘삼손과 데릴라’를 개막작품으로 선정, 화려한 막을 올렸다. 1980년 이후 4번 연속되는 변화없는 무대가 다소 식상했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소프라노 올가 보로디나의 열창이 또다시 무대를 살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프랑스 작곡가 생상이 작곡한 그랜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당시 통속적인 코믹 오페라를 즐기던 프랑스 오페라 팬들에게 외면받았다. 작품이 너무 깊이 있고 무거운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에서 초연을 본 뒤 크게 성공, 독일 각처를 떠돈 뒤 1890년에 파리에 입성할 수 있었다.
막이 열리면 팔레스티나의 가자 광장. 블레셋인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의 불행을 탄식하며 새로운 지도자(사사)가 나타나 민족을 구원해 줄 것을 기원한다. 이 때 삼손이 나타나 군중들을 위로하며 신의 가호를 믿으라고 권한다. 1막은 이스라엘의 새 사사로 등장하는 삼손의 활약이 펼쳐지는 장면으로 다소 지루하고 시각적인 전개에 불과하지만 종막 15분여를 남기고 데릴라가 등장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2막은 데릴라의 유혹에 넘어가는 삼손의 이야기…. 데릴라가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가 심금을 울린다. 3막에서는 화려한 발레가 펼쳐지며 괴력을 회복한 삼손이 다곤 신의 사원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볼 만하다.
‘삼손과 데릴라’ 남은 공연 : Sep. 19(7:30 pm), 22(7:30 pm), 25(8:00 pm), 28(8:00 pm)
티켓 문의 : www.sfopera.com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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