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도 거울만 보면 이래볼까 저래볼까 마음이 가닥을 잡지 못하는 일이 있다. 흰머리 염색이다. 미장원 가길 즐기지 못하는 편이라 하는 수 없이 가끔 집에서 염색을 하고는 하는데 복잡해서 귀찮은데다가 미장원에서 하는 것처럼 잘 되지도, 오래 가지도 않아 영 탐탁치가 않다. 게다가 이제는 평생, 그것도 앞으로는 더 자주 해야 할 거라 생각하면 정말 재미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는 아침방송에서 염색약이 건강에 해롭다는 한 연구 결과를 듣고서 좋은 계기라 여기고 염색을 그만두리라 굳게 마음먹은 적이 있다. 그러다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어느새 희끗거리는 흰머리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얼마 못가 결국 그 결심은 깨어져버렸다.
이후로도 줄곧 염색할 때만 되면 거울 앞에서 수십 번 머리카락뿐 아니라 마음까지 이리저리 뒤집고는 하는 것이다. 안하자니 보기 싫고 나이 들어 보이고, 하자니 아무리 몸에 해롭지 않은 천연염료라도 귀찮고…
그런데 지난 주말 샤핑을 나갔다가 자신 있게 무염색주의로 내 맘을 굳히게 만든 멋쟁이 아줌마를 만나게 되었다. 눈길을 끄는 산뜻한 복장의 단아한 중년부인이 지나가는데, 동양인 인데다가 뭔가 독특하다 싶어 한참을 돌아보기까지 하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흰머리가 희끗희끗 섞여 지저분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salt & pepper’ 머리로 단정하고 자연스러운 단발머리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지극히 평범한 옷차림인데도 세련되고 경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얘기하는 모습도 무척 포근해 보였다. 한마디로 있는 그대로에서 최고를 연출해 내며 멋있게 늙어가고 있는 내공 가득한 아줌마가 아닐까 싶었다. 흉내라도 내면 왠지 내공이 쌓일 것 같은 생각에 그동안 염색이 귀찮기만 했던 게으른 마음까지 합세하여 그 멋쟁이 아줌마처럼 흰 머리를 멋있게 내보이며 살겠노라 마음먹었다.
재미있고 지키고 싶은 결심이면서도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한편 의심스러워하다 요즘 헤드라인 뉴스를 장악하고 있는 주인공이 생각났다. 명칭도 다양하게 ‘게이트’ ‘쓰나미’라는 단어까지 등장시킨 이번 사건은 주위 사람들을 별의별 얘깃거리로 이리저리 엮어가며 오랫동안 주요뉴스감에서 밀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 어떤 진실로 마무리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작은 한국을 한바탕 발칵 뒤집어 놓은 학력위조였다.
학력을 중요시 하는 건 비단 한국 사회만은 아닐 것이고 위조나 사기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우매한 수단으로 함께 존재할 것이다. 욕심나는 학력을 위조하는 일은 학력이 중요시 되다 못해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는 저지를 법한 죄목이다. 그렇다 하여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한 우리의 학력위조 수준을 있을 법한 사건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소금 후추머리’ 아줌마를 보며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다 못해 사기까지 동원하는 학력위조의 주인공들이 생각나는 건 그들과는 정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나를 만들어낼 줄 아는 이 아줌마의 ‘나 만들기 장인정신’ 때문인 듯싶다. 맡겨진 ‘장인’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갈 수 있는 ‘장인정신’의 그 자신감과 당당함을 배워 자신과 관계를 파괴하는 학력위조와 같은 병폐의 길로 더 이상 들어서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선윤 / USC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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