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10명의 선정과정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한국시인협회(회장 오세영)가 한국일보와 공동 기획으로 한국 현대시 100년을 빛낸 10대 시인을 선정, 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10대 시인과 대표작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문과 교수들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해 생존 작가를 제외한 한국 대표 시인들 가운데 숙고와 토론 끝에 결정했다.
선정위원들이 각자 작성한 대표 시인 10명 및 작가별 대표작 목록을 취합한 결과 김소월, 만해 한용운, 미당 서정주는 만장일치로 선택됐다.
소월의 대표작으론 6표를 얻은 ‘진달래꽃’이 뽑혔고 만해의 경우는 ‘님의 침묵’(9표)이 압도적이었다. 미당은 무려 7편이 대표시 물망에 오른 뒤 ‘자화상’ ‘국화 옆에서’ ‘동천’을 놓고 재투표 끝에 ‘동천’이 대표시로 최종 선정했다.
다음으로는 “동시대의 김소월, 김영랑 류의 서정시와 달리, 모던한 시적 정서와 언어를 천착한 최초의 시인”으로 평가된 정지용의 ‘유리창’이 뽑혔고, “평안도 산골 마을의 토속적 정취를 감칠맛 나는 방언으로 표현”한 백석과 “시의 예술성과 사회성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려 한 김수영이 나란히 8표를 얻었다. 두 시인의 대표작은 큰 이견 없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풀’이 선정됐다.
다음으로 이상의 ‘오감도 1호’,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이 뽑혔고, 10번째 대표 시인으로는 재투표 끝에 박목월이 결정됐다. 목월의 대표시로는 ‘나그네’가 선정됐다.
선정위원들은 “10대 시인이란 비좁은 자리엔 서지 못했지만 100년 시사를 빛낸 작가들은 너무나 많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상화 김영랑 이육사 김현승 이용악 조지훈 신동엽 박재삼 기형도 등 이날 입에 오르내린 시인들은 이 중 누구를 최종 명단에 올리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적 성취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오늘부터 한국 현대시 100년을 빛낸 10대 시인의 대표시를 차례로 소개한다. 시 전문은 해당 시인의 정본, 혹은 그에 준하는 작품집에 수록된 내용을 따르고 그 출처를 밝힌다.
<1>김소월 ‘진달래꽃’작품해설
눈물보다 서러운 축복 “잘 가세요”
1922년 ‘개벽’에 발표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남녀 간의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낡은 시가 아니다. 이 시는 1920년대라는 시대적 단위를 넘어서서 사랑의 보편성을 노래한 20세기 한국의 명시라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우선 형식과 언어이다. 알려진 것처럼 7·5조 또는 3·4·5음절의 3음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매연 3행 모두 12연의 기ㆍ승ㆍ전ㆍ결의 구조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미적 형식으로서 견고한 완결성이 이 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상적 어휘들 또한 시적인 완결성을 위해 긴밀하게 변주되어 하나의 명편이 탄생된 것이다.
다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절절한 호소력이다.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고 해서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매 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곡진한 종결 어미들은 모두 이별의 정서를 절실하게 전하는데 있어서 유감이 없다. 남성도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는 이처럼 여성적인 어조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이 순간의 이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실 때’라고 분명히 화자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역겨워서 ‘가실 때’는 님이 가시는 미래의 그 어느 때이다.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이별의 슬픔을 예견하면서 사랑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의 묘미이다. 사랑의 기쁨을 직접적인 언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 한국인들이 우회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방식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시의 화자가 이별의 그 순간 눈물을 흘리느냐 흘리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이 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로 끝나고 있다. 이별을 부정하는 ‘아니 눈물’을 흘린다고 했으니 그것은 이별의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정의 눈물이 통곡의 눈물보다 더 깊은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을 김소월은 깨달았던 것이다. 김소월을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만든 작시법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최동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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