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얻게 되고 예상 밖이라서 그 즐거움이 몇 곱절이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몇 곱절 즐거움의 수준이 아니라 짐짓 나서기조차도 망설였던 나들이가 신선놀음으로 돌변하는 횡재를 하게 된 일이 일어났다.
관련 행사가 제주도에서 있었고, 행사 후 예정된 주말관광에 대해 친구가 의견을 물어왔다. 계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바다낚시인데 그 말만으로도 멀미가 난다며 같이 놀기로 한 그룹 중 포기한 이들이 몇몇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지선’ 낚시는 바다에 큰 배를 띄워놓고 하므로 멀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그 정도 설명으로는 내가 전에 겪었던 바다낚시의 끔찍한 기억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남들도 다 가는데 설마’ 하며 따라나섰다가 바다 한 가운데 꼼짝없이 갇히는 바람에 바다구경은커녕 맛있는 싱싱한 회 한 점 못 먹고 왝왝거리던 기억이 10년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떠오르며 또다시 기분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너네들이나 가세요.”
일단 바다낚시를 거절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그룹에서 떨려 나 혼자 움직여야 한다는 게 왠지 끈 떨어진 가여운 연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정말 멀미 걱정 안 해도 되고, 만약 내가 힘들어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방 데리고 나오겠다는 주위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 탐탁찮은 기분은 바지선으로 가기 위해 오른 통통배에서부터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드높은 가을 하늘과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가르며 상쾌한 바닷바람에 온몸을 맡기는 순간 몸의 모든 불순물이 다 증발하고 어느 새 자연과 하나 되어 투명해진 나를 느낄 수가 있었다.
멀리 제주도 해안이 보이는 정도쯤에 정착하고 있는 바지선에 첫 손님으로 도착하자 바지선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일 수밖에 없는 선장님이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배에 오르자 우리 일행의 입에서 하나 같이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 너~무 좋다. 신선이 따로 없네~”
넓디넓은 바다 한 가운데 바닷물의 잔잔한 흔들림, 그리고 하늘과 바다와 바람이 전부인 그곳, 아마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리라 싶었다.
간단하게 선장님으로부터 낚시의 기본지식을 전수 받았다. 물론 처음 얼마간은 물고기 밥을 대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즐거운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고, 기념촬영까지 하며 일행은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다금바리다! 옥돔이다! 찍어 찍어!”
배에 있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남이 잡아 올린 고기들이 모두 내 것 인양 다 같이 즐거워했다. 어느새 정해진 두 시간이 가까워지자 다들 이후 야무지게 잡아놓은 제주도 관광 스케줄은 안중에도 없이 어떻게든 배에 더 머물고 싶어 선장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얼마든지 계십시오”하는 선장님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사면이나 된 것처럼 신나했다. 어느 정도 생선이 모이자 그새 서로 친구가 되어버린 다른 일행과 함께 회를 뜨고 생선 소금구이를 시작했다.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싱싱한 회와 쫄깃쫄깃한 생선구이… 어느새 돌려지는 술잔이 그저 물 잔만 같았다. 상당히 고가라는 다금바리는 먹어도 먹어도 남아돌 정도였다. 무릉도원 수준의 바다 정경과 사람들과 맛에 취해 정말 얼마를 먹었을까…
그나마 정해진 저녁 약속이 있어 못내 아쉬워 반드시 또 오겠노라 다짐을 하고서야 우리 일행은 배를 떠날 수가 있었다. 뭍으로 돌아오니 바다 위 세상이 새삼 더욱 더 아쉬운 꿈의 세상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상쾌해지며 기운을 돌게 하는 추억거리. 이 바다 나들이는 한참동안을 되새김하며 내 삶의 에너지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출장으로 간 이번 여행이었지만 주말에 누린 휴가에서 예상치 못했던 훌륭한 에너지 월척을 낚아온 것이다.
김선윤 / USC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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