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 기금모금 추모 예배. 내년 1월10일 필라연합교회
한국 전쟁 당시 흥남 부두에서 피난민 10만 명을 탈출시켜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고 현봉학 박사가 타계 한 지 1개월 반이 지나 필라에서 장학 기금 모금 추모 예배로 부활하고 있다.
고 현봉학 박사가 지난 1950년대 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인연을 맺었던 서재필 재단(회장 정환순)과 필라 한인 연합 교회(김재성 목사)는 내년 1월 10일 오후 7시 30분 노스 필라에 있는 연합 교회에서 현봉학 박사 생애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서재필 재단 관계자는 “현 박사는 지난 1950년대 펜 대학에서 임상 병리학 관련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연합 교회를 세우는데 앞장서고, 1970년대에는 서재필 재단 창립 직후 초대 이사장으로 봉사했다”면서 “필라에 있는 토마스 제퍼슨 의대 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했던 현 박사의 필라델피아와의 인연과 그의 훌륭한 생애를 기리기 위해 장학금 기금 모금 추모 예배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 현봉학 박사는 지난 11월 25일 뉴저지 주 물렌버그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고 현봉학 박사는 1944년 한국의 연희 전문대학(현 연세대)을 졸업한 뒤 버지니아 의대에서 한인 최초로 임상 병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1950년 연세 대 강사로 초빙됐다가 한국동란을 만났다. 해병대 사령관 통역 고문으로 참전했던 현 박사는 함흥에 진주한 미 10군단 에드워드 알몬드 군단장의 민사 고문관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해 말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오면서 맥아더 장군이 10군단의 철수를 명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만 명의 피난민들이 흥남 부두에 몰려들었다. 현 박사는 알몬드 군단장에게 영하 30도의 추위에 떨고 있던 피난민들과 함께 철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으나 “군인이 탈 군함도 부족하며 전쟁터에서는 군인이 우선”이라는 답변과 함께 거부당했다.
현 박사는 작전 참모였던 에드워드 포니 대령과 논의한 끝에 탱크 등 장비를 실어 나르는 LST 수송선 빈 자리에 피난민을 태우기로 하고 알몬드 군단장의 허가를 받았다. 이 때 9만 8,000명의 피난민이 남한으로 탈출했으며 유행가 ‘굳세어라, 금순아’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흥남 부두에서 탈출한 뒤 필라 교외 도일레스 타운에 이민 온 정장준 씨에 의해 확인됐다. 서재필 재단은 지난 2004년 현봉학 박사와 정장준 씨의 첫 만남을 주선했다. 당시 현 박사는 정 씨에게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물었으며 정 씨는 “당시 피난할 수 있었던 덕분에 미국에 정착해 잘 살고 있다”고 화답했다. 정장준 씨는 “13살 때 부모 형제를 모두 잃어버리고 흥남 부두에서 피난민을 실은 LST 수송선을 탔다”면서 “당시 먼 바다에서 바라본 흥남 부두 폭발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거제도에 수용됐다가 1973년 미국에 이민 왔다.
한편 서재필 재단 측은 내년 1월 10일 추모 예배에서 현봉학 장학기금으로 조성하기 위해 조위금이나 조화를 보내실 분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수표(payable to Jaisohn Center)로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문의 215-224-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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