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수상이 12월27일 선거운동 중 암살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파키스탄은 극심한 혼돈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파키스탄의 최근 역사에 부토 집안만큼 영향을 끼친 집안은 없다. 부토의 아버지 알리 부토는 1970년대 처음에는 대통령이다가 수상으로 있던 중 군부의 쿠데타로 실각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79년 군사정권은 부정부패의 혐의에다 정적을 암살하려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사형에 처한다.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당수이던 아버지가 투옥되자 하버드와 옥스퍼드에 유학했던 재원인 베나지르가 아버지 후계자로 파키스탄에 돌아오게 되고 그 자신도 군부에 의해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만다.
1988년 알리 부토를 전복시킨 군부 독재자 모하메드 지아가 비행기 사고로 죽게된 후의 선거에서 PPP의 승리로 불과 35세였던 베나지르 부토가 이슬람권에서는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부정부패 혐의로 실각했다가 또다시 선거 승리로 수상을 역임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의 정치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파키스탄에서는 정당이 유명 집안의 봉건적 전유물로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PPP가 부토 집안의 소유물처럼 움직여진다는 점은 베나지르 여사 아버지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던 것처럼 베나지르 자신도 유서에서 19세 된 아들을 후계자로 거명했다는 사실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옥스퍼드에 유학 중인 아들이 파키스탄에 돌아와서 당권을 공식적으로 받기까지는 아버지가 권한대행을 한다는 것이니 말이 민주정치지 집안과 부족과 출신 지방의 복잡한 함수관계에 의한 정치 행태다.
베나지르 부토 여사의 두 번째 수상 시절도 군부의 개입으로 끝났다. 또 그와 그의 남편 알리 자르다리가 부정축재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었고 상당한 증거도 있다는 보도도 있다. 또 놀라운 사실은 베나지르의 어머니는 베나지르의 남편, 즉 자기의 사위가 자기 아들을 암살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9.11 이후 알카에다와 탈레반과의 싸움에서 파키스탄의 현 군사독재자 무샤라프 대통령을 의지해왔었다. 2002년부터 파키스탄에 투입되는 미국의 군사 원조는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 무법지대에는 탈레반들이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어 무샤라프의 반테러 전쟁의 기여도가 의심받아오기도 했다. 게다가 장기집권을 위해 무샤라프가 대법원을 해산시키는 등 무리수를 두어 파키스탄 정국은 불안해졌다.
따라서 미국은 영국에 망명했던 베나지르를 종용해 파키스탄에 돌아오게 해서 선거를 통해 무샤라프와의 공동 정권을 이룩하여 파키스탄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베나지르가 암살된 것이다. 무샤라프 정부는 그 사건의 배후에는 알카에다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고 있어 궁여지책으로 영국 경시청에 조사를 의뢰하고 있다.
미국, 아니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를 70여 개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과 이란에 핵무기를 이전한 파키스탄이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 이슬람 과격파들이 집권하게 되는 경우 핵무기 기술이 알카에다 등 테러분자들에게 유출되는 최악의 상태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베나지르 부토 여사만이 파키스탄의 가장 인구 많은 지역인 ‘푼잡’과 두 번째 인구 많은 ‘신드’ 지역을 어울러 통합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보는 식자들이 있는 만큼 그의 암살 이후의 정국 소요가 파키스탄을 공중분해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베나지르와 하버드 동창생이자 크로아티아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던 피터 갈브레이스는 파키스탄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을 지배하는 세 기구, 군부, 정보부, 그리고 핵무기 당국 중 정보부는 탈레반을 비밀리에 지지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니까 그 나라가 어찌될 것인가가 심각한 문제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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