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용 ‘담북장햇살’중
한겨울 할머니 묘소엘 가면
겨울 햇살에서 담북장 냄새가 난다
고드름 굵게 쳐진 처마 아래
김장철부터 시름시름 말려놓은 무청 시래기
듬뿍 넣고 끓인 담북장에선
할머니 곰삭은 팔십 평생 속울음 냄새가 난다
대청마루 밑에 넣어둔 보랏빛 씨감자
부엌 한 편에서 싹을 틔운 푸른 대파
끓어 넘치는 뚝배기에서 송송 끓으면
겨울 햇살도 입맛 다시며
한 술 뜨는 숟가락에 서둘러 내리꽂힌다
…… 중략 ……
꼭두새벽부터 소여물 끓이는
할머니 이마에 식은 땀 쉴 새 없지만
한 뼘씩 커진 손자들 쑥대머리 너머로
창창한 뭉게구름이 달리기를 한다
굼뜬 겨울 햇살 끼어 든 침침한 아랫목에
눈감으신 허리 굽은 할머니
팔십 평생이 저토록 곰삭았을까
음식은 기호식품인 거 맞다. 추억. 그리움. 아픔. 행복 등등이 적힌 메뉴판. 어떤 메뉴를 고르면 담북장으로 끓고, 어떤 메뉴는 그리움으로 끓어오르는. 나는 복어 그림이 그려진 일식집에만 들어서면 기어이 아버지를 메뉴로 고르고야 만다. 독기라고는 평생에 1그램도 못 품어 봤던, 그래서 독을 품은 복어에게 쉽게도 끌려가버린. 어이없는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펄펄 끓인 복을 먹어치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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