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의 죽음
지난 1월 스탠포드대학 박사과정에 있던 한 청년의 장 례식이있었다.김영환, 그는 가난한 자와 장애우들과 약자들에게특별 한 관심이있었다. 일요일날 교회에 오면 그는 장애우를 업고 돌보먼서 기뻐하였다. 그는 서울 과학고를 평점 99.9로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다.
어릴때 심장수술을 받기도했지만 그는 여러운동을 좋아하고 건강하게 자랐지만 결국은 그 심장이상으로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이땅을 떠나든날 은 1월 20일 주일이였다.
그날 저녁 그는 자기집에 목장모임을 준비했었다. 스탠포드 쉐마목장(목자-하정희)의 예비목자로서 자원한 그는 목원들을 자기집에 초청해 놓고 자기는 더좋은 천국의 초청을 받고 그날 그렇게 떠난 것이다.
장례식날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집례를 하기어려 웠었다. 한국에서 달려오신 그의 아버님은 장례식 없이 조용히 아들의 유골을 안고 떠나시고자하셨다.
그러나 아들친구들의 부탁으로 조그마한 홀을 빌리셨다. 그의 어머님은 20여년 넘게 불교에 독실한 분이셨고?아버님은 무교이셨다.그날 장례식때 20-30명쯤 오리라 예상했던 조문객은 200여명이 넘어서 대부분은 바깥 홀에 서 계셨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식사자리에서 그의 아버님이 한마디하셨다. 대부분 장례식에 90%는 체면 때문에 참석하는데 저는 어제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리 고 장애우들을 위해 큰 헌금을 해주셨다.
김영 환 ,그는 본래?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였었다. 그러나 스탠포드에 유학와서 그는 좋은 선배를 만났다. 3년넘게 그 선배는 영환이와??놀아주고 운동 같이하고 밥사주고 극장 같이갔다. 그 사랑의 섬김이 결국은 그의 마음을 열게 하였고 교회문을 두드리게 만들었다. 작년 봄, 그는 용서받은 탕자를 공부하더니8월 12일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가을 그는 해처럼 빛나는얼굴로 생명의 삶을 공부할때 화요일 밤마다 키타로 찬양을 섬겼다.
2주전 영환이의 친구들이 그의 책 3박스를 갖고와 교회 도서 관에 기증하였다. 그 책중에는 탁월한 저술가인 달라스 월라드의 책이 많았고 한국저자로는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의 책들이 많았다. 스무살 나이에 채봉이를 낳고 이땅을 떠난 20살 엄마를 그리던 고 정채봉 선생을 영환이도 좋아했던 것 같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무었으로 이 이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나 천국이 있기에 우린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있다.
우리보다 영환이를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천국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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