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28일 한인회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그래머시 길에 2층 건물을 매입한 KHEIR직원들이 이삿짐을 나르고 있다.
양로보건센터 건립사업은 KHEIR가 새로운 도약을 하는데 중요한 전기가 됐다. 1994년 6월에 열린 센터건립 기금마련 행사에 6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 높은 관심을 보였다.
LA폭동 계기 역할·위상 크게 확대
타운 건강지킴이 한인건강정보센터(KHEIR) <2>
1990년대는 한인건강정보센터(KHEIR)가 안정 궤도에 올라 확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특히 LA폭동은 한인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KHEIR가 한인사회 건강 지킴이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강화해 나가는 계기가 됐으며 주류사회에도 그 비중을 깊이 각인시키는데 큰 도움이 됐다.
폭동 피해자 도우미 역 톡톡 노인 지원 프로그램 개발 박차
연 예산 500만달러 급성장
로라 전 2대 소장이 취임하면서 한인건강정보센터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다. 1990년 8월 20일 제1회 가정간호요원 졸업식에서 전 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1990년 6월1일 초창기 기반을 다진 이명숙 초대 소장 후임으로 로라 전씨가 부임했다.
전씨는 UC버클리를 졸업하고 LA시장실 및 주정부 산하 개발국에서 인턴십을 거친 뒤 로이발 알라드 주 하원의원(현재는 연방하원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소장과 초대 이사장이었던 한응수 박사가 찾아와 전씨에게 소장직을 제의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뒤 한 박사가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알라드 의원에게 전씨를 소장으로 스카웃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그 것이 전씨가 KHEIR에 몸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전씨가 소장으로 부임할 당시 사무실은 한인회관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4-5명의 직원이 근무중이었다. 또 주로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불과 29세에 불과했던 전씨는 기존 업무를 확충하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나선다. 이 때 전씨와 호흡을 맞췄던 스태프들이 크리스 김, 제넷 장, 캐디 백, 제리 유, 조앤나 리, 수잔나 고씨 등이었다.
이렇게 막 일을 펼쳐나가려고 할 무렵 LA 폭동이 터졌다.
다른 1.5세 단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KHEIR 역시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던 폭동 피해자들을 주 고용개발국에 안내해 필요한 서류를 접수시켜 주고, 저소득층 아파트 임대절차를 도와주느라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또 SBA융자를 얻어 재기하려는 한인들을 위해서는 연방재해관리청(FEMA)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를 벌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폭동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연방과 주 의회에서 개최하는 각종 청문회에 다른 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출석해 한인사회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 역시 작은 일이 아니었다.
전씨는 “당시 의원들이 한인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인식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답답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면서 “정치력 부재라는 아픔이 맨 살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폭동은 KHEIR에 몸담은 관계자들에게 사명감을 가슴 깊이 일깨워줬다. 또 이는 주류사회를 겨냥한 기금확보 노력을 더욱 배가시켰다.
노인문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가면서 일방적으로 타 기관 한 곳에만 지원되던 정부기금을 받아낸 것을 비롯해 담배 추방운동, 간접흡연 방지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기금을 확충해 나갔다. 특히 에이즈 확산 방지를 위한 프로젝트는 아시안 관련 기관중 KHEIR가 가장 먼저 시작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같은 노력은 80만달러 대에서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던 기금 확보에 숨통을 트게 만들었고, 비영리기관을 지원하던 정부 및 일반 사기업들도 더 이상 KHEIR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양로보건센터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1994년 KHEIR는 연방정부로부터도 기금을 지원받기 시작하자 한인회관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한인타운 그래머시 길에 위치한 2층 건물을 매입해 입주했다. 효과적인 운영과 사업확대 필요성,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한 변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내적인 질 향상과 함께 외형적인 성장도 탄력을 받았다.
웨스턴과 샌마리노, 그리고 버몬트와 8가에 양로보건센터를 잇달아 설립한데 이어 가디나에도 새로운 센터 건립에 나섰다.
이와 함께 직원 수도 부쩍 늘어나 풀타임 직원만 60여명에 이르렀고, 2003년에만 예산 규모가 5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1.5세 비영리 단체중 최고 수준이었다.
KHEIR는 이같은 성장 속에 또다른 변화를 모색한다.
6가와 하버드 길에 위치한 코아 빌딩 매입에 적극 참여하면서 현재의 운영체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이상을 소장으로 재직하며 KHEIR의 성장을 주도한 전씨는 한 때 일부 이사진과의 마찰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1일 에드워드 박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한다.
현재 USC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씨는 “나에게 기회를 줬던 한응수 박사와 이명숙 전 소장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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