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떠나기가 싫어 몸부림을 친다. 지나가는 바람이 길지 않은 소매를 칼날처럼 스며들어 가슴을 얼린다. 센 바람에 타고 가는 자전거가 뒤뚱거린다. 새파랗던 하늘이 금세 먹구름으로 가려지고 차가운 빗방울이 사정없이 떨어진다. 근심어린 얼굴 위로 또 손등으로 떨어져서 아프기까지 한다. 나는 겨울이 싫어졌다.
길고 긴 밤, 텅 빈 집을 지키며, 아침에 더디게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노라면 어제의 잘잘못을 위해 더 많은 용서를 빌어야 하기에 바쁜 아침은 숨이 차다.
멀리 떠나간 아이들 소식이 끊어진 겨울은 싫은 거다. 잊어지려니 하면 더욱 보고 싶은 아이들. 집에서 오손도손 싸움박질 하고, 하라는 일은 밀고, 빤질빤질 돌아만 가던 아이들. 너무 커서 부모가 소용이 없게도 됐지만 부모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겨울은 시간을 재면서 가지만 봄을 기다리는 나는 그렇지가 않다. 시샘하는 봄바람이 밤새도록 나무를 울리고, 때를 부려 바깥 집기들을 날리고 팽개치기는 하지만, 아침은 숨소리를 죽이고 모른 채 제자리로 온다.
게을러서 버리려고 밖에 내다 논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직도 새파래서 그냥 놔두었는데 어쩐 일인지 더욱 파래지는 생각이 든다. 착각이겠지. 내일은 반드시 버리고말고.
냉장고에 붙여 논 딸아이의 편지를 또 읽고 또 읽는다. “엄마 아빠, 행복하세요. 저는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쓴 글이 적혀있고 곁에는 비스듬히 얼굴을 손바닥에 얹고 해맑게 웃는, 딸 사진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밀린 것이 있어서 이스터 휴가에는 집에 갈 수가 없어요, 전화 메시지를 받고 시름해져서, 딸이 놓고 간 어항과 물고기를 턱없이 바라본다. 맡기고 간 물고기 한마리가 일주일도 못돼 흰 배를 드러내고 떠 있는 것을 안쓰러워서 얼른 어항마저 버렸는데, 집사람이 어항을 깨끗이 닦고, 새로 사다 넣은 두 마리 물고기가 보란 듯이 멋지게 어항 안을 헤엄치고 있다. 딸이 늦어 오는 덕에 이제 딸에게 미안해야 할 일은 덜었다.
딸이 오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뭔지 모르게 불평이 커지고 마음이 곤하다. 왠지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길을 화가 난 사람처럼 자전거를 몬다. 바람이 빠졌는지 잘 달리지 않는다.
토요일 저녁이라 길은 내 마음처럼 텅 비어 있다. 공허한 마음은 책으로도
달랠 수가 없다. 책이 침대 밖으로 떨어진다.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딸이 털장갑으로 나의 얼굴을 간지른다. 그리고 예쁜 겨울 파커를 들고 함빡 웃음을 짖는다. 나의 뺨에 키스를 한다. 주일 아침 예배에 목사님이 나를 보고 크게 웃는다. 나는 신사복 대신 까만 파커를 입고 있었으니까.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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