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들이 온 사막을 뒤덮고 있다. 한여름 뜨거운 사막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베풀어주시는 위로와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겨울과 봄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LA에 살면서 봄맞이의 감동이 별스럽지 않았는데, 눈 내리고 땅이 어는 산장에 살다보니 엄동설한을 겪으며 따뜻한 봄을 고대하던 고향의 봄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돌아온 봄은 기다림과 막연한 그리움을 움트게 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봄 유혹에 못 겨워 아가씨들이 무작정 가출을 하고, 일선 부대에서는 탈영병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단다. 나는 해마다 봄에 속아서 너무 일찍 꽃씨를 뿌려 얼려 죽이고, 시치미 떼며 들락날락하는 봄 장난에 해마다 감기를 앓는다.
봄은 기다리다 놓치지만 속일 수 없는 계절이다. 그래서 아침저녁 찬 공기도 다 신선하고 땅위 식물들이나 땅속의 생물까지 일제히 기지개를 펴며 서로 영토 확장을 위한 대 전쟁이 시작됐다. 나도 2월부터 지금까지 석유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등 각종 나무들을 심으며 땅 주인 행세를 했다.
그러나 그 열매들이 내 것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 산장에는 주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잠든 동안은 달과 별들의 보호아래 짐승들의 공화국이다가 새벽에 내가 필드에 나가면 끝까지 버티던 사슴부대들이 힐끔 힐끔 눈치 보며 정권 교체하듯 슬그머니 비켜준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 영토를 인수받은 게 아니다. 해 동안은 온갖 새들이 꽃이든 뭐든 먹이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제 것인 양 다 먹어치운다. 그뿐 아니라 두더지로부터 땅속의 것들과 토끼들이 제 나라처럼 염치없이 다 장악하고 있는 걸 보면 오히려 내가 한 귀퉁이 세 들어 사는 기분이다.
내 친구들은 집 뒤뜰에서 온갖 채소를 다 심어 먹고, 심지어 노인 아파트 텃밭에서도 각종 야채를 심어먹는데 나는 이 넓은 땅에서도 화분에다 상추를 심어 망을 쳐놓고 키운다. 완전히 자질구레한 동물들과의 전쟁이다. 하긴 그들의 영역에 내가 들어와 사는 것이니 그 동물들은 오히려 나를 침략자로 생각할 것이다.
영토란 국가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하 듯,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지역은 소유주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와 대치하고 있는 상대들에게는 세상 어느 법도 통하지 않는다. 이 넓은 땅에서 내가 장악하고 있는 공간은 작은 내 안방뿐이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니 영토가 큰 국가라고 국민들이 다 부요하지 않았다. 국토면적이 작아도 유용하게 쓰는 나라 국민들의 생활이 더 윤택했다. 소유는 능력과 비례하는 것일까. 그리고 소유가 행복지수의 척도를 결정하는 것일까.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소유를 귀중히 여겨 잘 보존하며, 몸담아 사는 집도 크고 작은 공간의 의미보다 자신에게 적합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봄에는 다른 계절보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싶어진다. 정원을 가꾸려면 많은 정성과 비용이 든다.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는 만큼 노력과 수고를 감당해야 하지만 지금 잠시 드라이브해서 시내를 벗어나면 사막에 지천으로 핀 들꽃을 볼 수 있는데 그 황홀한 봄 경치를 보는 순간만은 그 모두가 자신들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성호
시인·R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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