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은 특별하다. 항상 이맘때면 어머니를 기다리곤 하였다. 3월부터 복사꽃이 피기 시작하면 벚꽃 구경 오시라고 항상 전화로 졸랐다. 8남매의 장남인 우리는 늘 떨어져 지내는 것이 좀 서운하였으나 이곳이 춥다고 어머니께서는 LA에 계셨다.(그 곳엔 두 아들과 딸 하나가 거주함) 홀로(무남독녀) 자라신 어머님은 외로우셔서 자녀를 많이 둔 것을(3남 4녀에 15손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나 최선을 다하여 사랑으로 자녀들을 가르치셨고 자녀들이 다 출가하여 자기들의 전공분야에서 열심히들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며 늘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미국 오신 후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예전과는 많이 다르게 변화 되셨다. 솜씨 좋은 뜨개질로 조끼나 스웨터를 떠서 주위에 나누어 주시며 노인 복지 상조회에서 후진 양성도 하셨다. 현실적인 미국생활을 많이 이해하시게 되었다. 특히 그 전에 아들과 며느리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셨던 일들을 많이 회개하시고 효자보다 더 정확한 미국 정부를 늘 고맙게 생각하셨다.
한번은 우리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살 때 어머니가 머리를 염색하고 잘 손질 하시어 한껏 멋을 내시고 오셨다. 나이보다 머리가 일찍 희어진 큰 아들을 보시고는 너무 미안해서 큰 아들을 바로 보시지를 못하셨다. 그 후 어머니는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셨다.
20여년 홀로 사신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우리가 제대로 한번 모시지 못 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고 이쉽기만 하다. 이제 우리도 며느리를 얻고 보니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하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주신 어머니, 미국 시민권을 받으시려고 공부하시던 모습이 너무나 눈에 선한데 벌써 가시다니 우리가 잘 모시지 못 하였음이 죄송스러울 뿐이다. 어머님은 화사한 복사꽃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주일 예배를 정성껏 드리신 후 좋아하시는 비디오를 보시면서 주무시듯 가셨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어머님의 사랑과 교훈이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서 나는 금년에도 며느리에게 너무 보고 싶다고 전자 메일을 보낸다.
오늘도 아들과 며느리의 사진을 보며 기도로 마음을 달래본다. 전자 메일로 서로 안부 전하며 복사꽃만큼 활짝 핀 기쁨이 넘치길 기원하면서.
박정희 / 헌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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