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급히 서둘러서 한국에 다녀왔다. 은퇴한 이후부터 한국의 노모님들을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어 왔었다. 그러다가 한국의 끔찍하게 무더운 여름을 생각하고 더 미룰 수 없어 짐을 싸기 시작 했다. 두주일 예정 했지만 3일을 더 머물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제주에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나는 15년쯤 전에 제주에 가 본적이 있다. 그때 만해도 제주는 한적했고 관광버스로 주차장이 왼 통 메어져 있지는 않았다. 그때는 신혼여행 온 젊은이들로 제주공항이 시끄러웠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도 행복한 그들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생기에 넘쳐 있었다. 바닷가도 조용한 곳이 없었다. 모든 관광 코스와 풍경 좋은 곳은 수백 쌍의 하니무너들과 그들을 위해 추억을 만드는 사진사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제주에 대한 기억은 휴식이 불가능 했던 3일의 호텔생활과 절반쯤 오르다 그만둔 한라산행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 제주행에서 나는 신혼여행자들을 본 것 같지 않다. 이제 그들은 외국으로 나간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그 대신 전국에서 계절마다 찾아오는 여행객들과 수학여행 온 중고등 학생들로 제주는 여전히 활기에 넘쳐 있었다. 나는 서귀포 70리를 돌아보는 유람선 라이드를 즐겼다. 이제는 제주에 다시 갈 일도, 갈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서울.
서울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택시 기사는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불평하는 어투로 말을 걸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 텐데 어쩌자고 수입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우리의 동의를 유도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아주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요, 45년 동안 미국 쇠고기를 먹고 있거든요.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도, 그 친구들의 친구들도 모두 먹거든요. 그리고 세계적으로 110 여 개국이 미국 쇠고기를 먹고 있는데 왜 한국만 야단이지요? 그는 아주 무안해 하면서, 한국에서는 정치를 잘 못해서, 라며 우물거렸다.
조선호텔 14층 우리 방은 앞이 탁 터져 시청 앞 광장을 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푸른 잔디와 덕수궁 돌담을 보고 좋아한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오후부터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누군가가 확성기를 통해 떠들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한국 사람들, 특히 서울의 젊은이들 시위하는 실력은 알아주어야 했다. 초등학생들까지 합세하여 우선 애국가를 합창하고 시작하는 이 데모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고 매일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노란색 풍선을 흔들고 있어서 처음 우리는 어린이를 위한 축제가 시작되는가 생각했었다. 그 일대의 교통은 마비 상태여서 우리가 인천 공항으로 나오는 날, 우리를 태운 리무진이 그곳을 빠져 나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 많은 촛불을 밝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그 어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이 있을까? 지금 한국의 하루는 미국 쇠고기로 해가 뜨고 쇠고기로 해가 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했다.
이 미국 쇠고기 건에 관한 한 한국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았다. 미국 쇠고기는 병든 고기, 먹으면 죽는다, 미국은 나쁜 나라. 이 그룹의 신념은 철저하여 한동안 그 신념대로 행동할 것 같았다. 그것이 정치적인 이유이든 개인적인 무지이든 거기에 어린 아이들까지 말려들어 시위에 앞장서는 광경은 아무래도 불안해 보였다. 반면 우리들이 만난 친구, 친척, 지인들은 모두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공교롭게도 미국 쇠고기와 촛불시위와 때를 같이 한 이번 여행이 앞으로 어떤 추억으로 남을 지 모르겠다.
송정원
전베벌리힐즈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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