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건 성공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다. 예술가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라면 이제 막 개인전을 통해 뉴욕의 미술계에 첫발을 딛은 양연진씨(사진)에게는 성공의 기회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6세의 양씨에게는 도대체 미래의 계획이 없어 보인다. ‘어떤 작품을 그리고 싶다’거나 ‘어떤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상투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
“ 제가 그런 식으로 목표를 말하면 꼭 그렇게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있나요? 저는 예술가로 살고 싶고, 그래서 뉴욕에 왔지만 꼭 성공한 화가가 될 것 같진 않아요.” 심지어는 “사람이 꼭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지 않느냐?”며 다소 허황된 비유까지 덧붙힌다. 반면 이런 부류의 사람이 2000년대 이전의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 새로운 세대
의 젊은 예술가 타입이 아닐까하는 기대도 생겨난다. 혹은 영화나 음악 등 간접 경험으로만 접했던 “무욕이 지나쳐 무기력해 보이는” 미국의 60~70년대 예술가들이나 90년대 슬래커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사실 고시생이나 의대지망생도 아닌 화가가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갖는다는 말 자체가 모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양씨처럼 “생활에 필요한 만큼 돈을 벌어가며 실험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해보고 35살쯤 개인전을 열어볼까 생각했다”는 태도가 더 올바른 것이 아닐까. 결국 저지 시티의 ‘스와디 타이 레스토랑’에서 열린 양씨의 첫 개인전 ‘숨바꼭질(Hide & Seek)’은 목표보다 10년 가까이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앞당겨진 셈이다.
기른던 요크셔 테리어가 갑자기 병이나 당황하던 양씨는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스와디 레스토랑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하자 업주는 반색을 하며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전시를 제의했다. 스와디 식당 인근이 지난해 시에 의해 예술 지역으로 정해지고 인근 갤러리와 함께 갖가지 활발한 전시가 벌어지던 와중이었다. 양씨의 작품은 ‘식사를 하러 온’ 그러나 일반 식당의 손님보다는 심미안이 뛰어난 이 식당 고객들로부터 “색채감이 화려하고 영적인 느낌을 준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애초에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던 양씨는 미대 1학년때 순수 회화로 전공을 바꿨고 2003년 미국에 와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를 졸업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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