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 알래스카 맨댄홀 빙하를 배경으로 일행이 함께 찍은 사진. 맨 오른쪽 끝은 곽건용 통신원.
커네티컷 통신(곽건용 통신원)
알래스카 대지 관광을 다녀와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섭리
지난 7월 11일부터 20일까지 커네티컷 지역거주 네 가정의 부부는 세파이어 프린세스를 타고
여행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를 위해 우리 일행은 약 10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면서 예약을 하였
다. 이번 여행은 뜻을 같이 하는 친구 부부들이 마음을 모아 대자연을 찾아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움을 같이 한다는 것이 커다란 취지였다.
역시 특별히 가진 이번 여행은 목표대로 매우 즐거웠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대지(Great
Land)’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주 큰 수확이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는 물론,
생애를 통틀어 가장 의미있고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다고 참가부부들은 평했다.
알래스카는 약 3만 년 전, 유랑 사냥꾼인 아시아인들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56마일 사이에 있는 베링해협(Bering Strait)의 육로가 생겼을 때 대거로 이주하였으며 그 후 그 아시아인들은 알리올스, 에스키모 그리고 인디안과 같은 세 원주민으로 분리되어 각 그룹의 고유한 풍습과 문화를 개척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으며 러시아 상인들의 출입과 유목민들의 이주로 인한 러시아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가 1867년 4월 4일,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암 헨리 시워드에게 알래스카를 팔 수 있도록 건의를 하였으며 5백만 달러만 주어도 팔겠다는 황제는 미국대사로 있는 에드오드 스토클 남작의 강력한 바게인으로 7백 20만달러를 받아 이를 만족해 하면서 팔았다고 한다. 땅의 가격은 한 에이커 당 2센트밖에 되지 않았으니 미국으로서는 큰 횡재를 한 꼴인데 그 당시는 쓸모없는 땅을 엄청난 금액을 주고 샀다고 비난해 이를 가리켜 ‘시워드 훨리(Seward Holly)’라 칭하였다 한다.
처음 정박한 항구 켓치켄(Ketchikan)에서 우리 일행은 곰과 셀몬들을 보았고 흰 머리 독수리도 많이 보았다. 또 많은 사람들이 밧줄을 타고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도 즐겼다. 2800여명의 승객들뿐만 아니라 다른 배들, 혹은 셋에서 내린 여객들로 조그만 항구도시는 꽉 차서 복잡하였으며 주민들은 기쁨의 아우성으로 장사를 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래스카는 정녕 하나님이 미국인들에게 선물로 내린 축복의 ‘대지’라 아니할 수 없었다.
주노(Juneau)는 알래스카의 주청이 있는 수도로 알래스카에서는 처음 개발된 도시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알래스카의 웅장한 멘덴홀 빙하Mendenhall Giacier)를 관람하였으며 그 크기가 로드 아일랜드 보다도 크다고 하였다. 우리와 같이 동행한 김성곤씨 부부는 헬리콥타를 타고 빙하 상공을 나르면서 내려다 보았고 빙하 위를 스카이크를 신고 걷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항구인 스캑웨이9SKagway)에서는 약 2800피트의 산위를 올라가는 열차를 타고 아슬아슬한 산기슭을 오르내릴 때 아주 위험스러운 스릴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섭리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배가 항해하는 동안에는 선박 안에서 여러 가지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흥미로웠고 동행한 장인용씨는 국제 핑퐁대회에서 개인전과 복식전 모두 챔피언을 하여 메달을 수상하였으며 골크 핍칭대회에서는 곽건용 본 통신원과 장인용씨가 각각 메달을 수상하는 흥미있는 시간도 가졌다.선원 종업원들과도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1900여명의 종업원 중 한국인은 여자 웨이추레스 한 명만 보았을 뿐, 모두 후진국가인 필리핀, 멕시코, 인디아, 러시아, 폴랜드, 남미 혹은 유럽의 빈곤국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1년에 9개월을 일하면서 침식을 무료로 제공받으나 월급은 최소한으로 받으며 3개월간의 무급휴가는 각기 자기 나라에 가서 즐긴다고 하였다. 인도에서 온 친구는 자기의 봉급으로 중류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전혀 이 일에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식사는 늘 선상에서 하였으며, 뷔페는 오전부터 밤 10시까지 수시로 먹을 수가 있었다. 식당에서 하는 식사는 웨이터 또는 웨이추레스 서비스를 받으면서 고급메뉴로 즐길 수 있었다. 엔콜애지를 버스로 여행한 후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가하는 동안 육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온 기쁨은 말할 것도 없이 There is no place like HOME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안타깝게도 함께 동행키로 했던 나의 아내가 한국에서 7월 21일부터 선교사로 일한 후 은퇴한 원로 선교사들을 위한 집회에 참석하게 되어 할 수 없이 우리 가정에서는 나 혼자만 참가하게 되어 매우 아쉬움을 남겼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