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었다. 이곳 LA로 이사와서 처음 경험하는 지진은 아니었지만 이번 지진의 흔들림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건물안에 있던 나는 바닥이 몇 초 흔들린 후 이쯤이면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연장됐던 흔들림이 몇 분처럼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혹시 이번 지진은…’ 하며 9.11때 봤던 영상들이 내 머리를 휘감을때 쯤 다행히도 지진은 끝났다.
건물의 움직임이 멈춘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의 놀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진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LA이지만 서로 이번 지진은 좀 길었다느니, 언제 확인을 했는지 진원지는 치노힐스 지역이라느니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동료 하나가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 역시 급한 마음에 휴대폰을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자 오늘 아이를 봐주시는 어머님,아버님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역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밖에 나가셨나 하는 생각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국에서 지금은 연결이 되지 않으니 나중에 다시 시도하라는 자동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아니 방금 있었던 지진 때문에 기지국이 무너졌나? 남편에게 계속 전화를 했지만 회사 전화로는 받질 않았고 핸드폰은 연결이 안된다는 자동 메시지 뿐이였다.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물론이고 나이드신 시부모님과 아이가 걱정돼 핸드폰과 집, 회사 전화로 번갈아가며 계속 전화를 걸었다. 뭐가 문제지? 왜 하필 이럴 때 핸드폰이 안 되는 것인지. 연락이 안되면 안될수록 걱정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한 두 시간 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괜찮지? 하고 묻는 목소리를 듣자 극도로 경직됐던 긴장이 풀리며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본인도 나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연결이 안됐었다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평안하게 들려 오히려 화가 날 지경이였다. 다행히 부모님도 밖에 계셨는데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걱정말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지진 직후 목소리만 전화로 확인 할 수 있었어도 이렇게 초조하진 않았을텐데.
저녁 식사를 하며 남편과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던 ‘지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전화 연결이 안됐던 이유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거는 바람에 시스템이 잠시 다운이 되었었기 때문이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전화를 걸려고 했길래 말이다.
다들 그랬었나 보다. 잠시의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 보니 가장 먼저 가족, 친구,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이웃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지진 직후, 가족들과 연락이 안되 안절부절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연결이 안된다는 자동메세지에도 불구하고 계속 똑같은 전화번호를 누르던 나. 같은 시간에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던 남편. 그리고 나와 똑같은 심정으로 가족, 배우자,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누르며 쌀쌀맞은 자동메세지에 한동안 가슴이 철렁했을 사람들. 그게 다 사람 냄새 나는 우리네들 살아가는 모습이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위급상황이 생기면 무엇을 제일 먼저 챙길까? 노트북 컴퓨터? 책? 지갑? 이제는 아마도 핸드폰을 리스트의 맨 윗칸에 넣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덧붙여 감사했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게 감사했다. 이만한 지진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다음번에 이런 일이 있다면 그 때는 내가 사랑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다. 전화받는 사람들이 한번쯤 고마운 마음이 들어 준다면 나의 30대도 좀 더 기름져지지 않을까.
지니 조 힐리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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