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헤어짐에는 아쉬움이 있고 그에 따르는 감회가 있기 마련이다. 그 동안 2년 넘게 ‘주말 에세이’ 칼럼을 써 왔다. 지금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다.
옛날 옛적 대학시절 전국 여류문학상 콩쿨 대회에서 수상한 이후부터 글을 쓴다는 일은 오랫동안 내 몸 한 구석에서 나를 괴롭혔다. 쓰고 싶은데, 써야 되는데, 쓸 수 없으니까, 괴로웠던 것 같다. 그리고 40년을 한글을 쓸 이유도 기회도 없는 문화권에서 사는 동안, 글 쓰는 일은 잊혀져 갔다. 참, 80년대에 어떤 인연으로 한국일보에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칼럼이다.
이 칼럼을 통해서 나는 여러 사람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의 초등학교 남자 동창생은 만나지 못한 사이에도 내 소식을 훤히 알고 있다고 농담을 한다. 내가 어디에 나들이를 하고, 언제 한국엘 다녀오고, 언제 봉선화 씨를 뿌렸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몇 명의 후배들과 그들의 남편들도 나의 에세이를 읽어 주셨다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어떤 떡집 아주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맞지요? 신문에 글 쓰시지요? 하며 반가워 하셨다. 그리고는 시원한 식혜 한잔을 주시며 한사코 마시라 하셨다.
어느 날엔 노신사 한 분이 먼 거리에서 도서관으로 나를 찾아 오셨다. 그분은 먼저 411에 내가 일하는 도서관 전화번호를 물으셨다고 했다. 그 다음 도서관으로 전화를 걸어 주소를 알아내고 내가 그날 일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도서관 카페에서 나에게 녹차와 초컬릿을 사 주셨다.
당신이 특별히 좋아하셨다는 몇 개의 칼럼을 오려서 봉투에 넣어 온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한 에세이는 접어서 지갑에 넣고 다닌다고 하셨다. 그것도 보여 주셨다. 종이는 색깔이 변했고 인쇄도 낡아 있었다. 내가 새 카피를 만들어 드렸더니 아주 기뻐하셨다. 나에게 꼭 상담 할 일이 있어 만나보고 싶었다고 찾아온 이유를 말하셨다. 그날의 상담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남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3년이나 묵은 봉선화 씨를 뒤뜰에 뿌리고 싹이 트나 하고 매일 들여다 본 얘기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이번 칼럼을 원래, 울 밑에선 봉선화, 라 정하고 나의 봉선화에 대해 쓰려고 했다. 나의 봉선화 꽃밭은 예상했던 것보다 번성해 있다. 각가지 빛깔로 싸리 울타리가 아닌 콘크리트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벌써 씨를 품은 조그만 씨 봉오리가 생겨나고 있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나는 그 씨를 받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필진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주말 에세이’에 나오는 글들을 열심히 읽을 것이다.
그 동안 내 글을 읽고 나를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송정원
전베벌리힐즈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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