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창문부터 여는 습관이 있다. 먼동이 어둠을 걷고 창에 바스러지는 햇살이 내 눈까풀을 간질이면 부스스 일어나 손가락 빗질을 하며 창문을 열면서, 끊어진 필름 같은 밤에서 깨어난 새 아침이 감사해서 밤마다 내 심장을 교훈 하도다라는 시편 말씀을 음미하게 된다.
제법 아침저녁으로 코끝의 신선한 공기가 싸-아 하고 모공이 조여 피부가 매끈함을 느낀다. 창 밖 언덕으로 기어오르는 호박 줄기에 맺힌 호박들이 밤새 얼마나 자랐나. 점검을 하고 있는데 반들반들한 호박 위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배회하고 있었다.
청명한 하늘에 고추잠자리의 붉은 한 점이 쪽빛 수틀에 소녀의 초경길이 곱다. 배냇 머리털같이 미세한 그물로 짜여진 날개로 무게 없이 날아다니는 그 자유로움을 보며 내 삶의 무게를 더 느꼈고, 곤충이지만 아무 꽃에나 추건 데지 않고 욕심 없이 아침 이슬마저 털어 내는 고상한 자태가 속물인 나를 부끄럽게 했다. 겨우 한 달 살기 위해 긴(1년 내지 7년)세월 유충과정을 겪은 고추잠자리니 무슨 애착과 헛된 욕망을 품으랴.
열달만에 태어나서 한 백년은 살아야 하는 우리와 다르리라. 집 값 자동차도 다 무겁고 사업장들도 생기를 잃어 일터로 향하는 아침이나 귀가 길 발걸음마저 무거워만 보인다.
온 여름 그 스트레스를 피해 온 사람들과 같이 왁자지껄 지내면서 몇몇 일찍 배타고 낚시하고 모터사이클 타며 한바탕 신나게 놀다 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아이들과 짐을 한차 싣고 왔다가 겨우 하룻밤 자고 다시 짐을 싣고 쫓기듯이 삶의 현장으로 가는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보면 바삐 살아온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 들 모두 안정을 찾아서 가족들과 느긋이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싶다. 여름 끝자락에서 사업상의 긴장이 풀어지는지 고추잠자리 한 마리를 보고도 아침부터 상념에 젖는다. 청산도 녹수도 아닌 사막에서 문득 “산 절로 절로 수 절로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절로, 그 중에 절로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라는 송시열의 시조를 읊으며 절로 절로 자라고 절로 절로 살아온 것 같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여지니 나도 이제 철들 모양이다. 유수 같은 세월이라니 잔잔한 물결이면 좋겠지만 센 물살인들 어찌하랴.
오래 전 아들 대학 기숙사에서 9월부터 시작하는 달력을 본 후 9월만 되면 또 새로 시작하는 달로 여겨졌었다. 작열한 태양 볕으로 여름 내내 속을 채우던 갈대가 병아리 속 털 같이 피어오르며 나의 새 시작을 채근하고 있다.
2006년 1월 내가 이 글을 시작한 때가 몇 달 전 같은데 몇 년이 되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할애된 내 지면을 채우면서 많은분 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타주로부터도 전화를 받았었고 방문 해 주신 분들도 있었다. 특히 1972년도부터 한국일보 독자로 독자번호까지 외우고 있던 오하이오 주에 거주하시는 조원제씨(대한민국의 영원한 해병)가 “만나고 싶었다”며 요세미티관광 앞서 우리 산장을 방문했는데 마침 그날이 8.15여서 같은 동족이라는 공통분모만으로도 처음 만남 같지 않고 반가웠다.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성호
시인·R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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