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신상’ 바람이 불고 있다. ‘신상’은 ‘신상품’을 줄여 말하는 것으로 한국의 가수 서인영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신상’타령을 하여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예쁘고 재능 있는 한 여자 연예인이 ‘신상’에 ‘목숨 거는’ 것을 사람들은 귀엽고 새롭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비호감 연예인에서 급격하게 호감 연예인으로 자리를 바꿔 잡기도 했다.
사실 고개만 돌리면 세상은 온통 ‘신상’들뿐이다. 새로운 계절에 맞는 ‘신상’, 새로운 집에 맞는 ‘신상’, 새로운 해에 걸맞은 ‘신상’, 새로운 직장에 맞는 ‘신상’… 갖다 붙이려면 무한대로 ‘신상’을 개발해 낼 수 있다. 이것은 상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예인은 물론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요즘 인기 중인 한국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신상’ 캐릭터는 바로 장미희가 연기하는 고은아라는 인물이다. 악역 같지만 공감도 되고 귀엽고 예쁘기까지 한 중년 여성의 역할이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로 주목받으며 ‘신상’ 캐릭터가 된 것이다.
중후한 역할로 유명한 연예인이 어느 날 갑자기 쇼프로그램에 나와서 웃기기 시작하는 것도 ‘신상’으로 인정받는다. 이제 사람들은 ‘신상’을 원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신상’이 되려고 노력중이다. 오래된 모습, 변함없는 모습은 이제 구식이라는 이름으로 잊혀져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는 ‘신상’만 찾기가 참 곤란하다. 물론 백화점, 샤핑몰마다 ‘신상’들이 줄을 지어 나오지만 알뜰한 미국형 소비자들은 아웃릿, 근처 할인점, 또 거라지 세일, 에스테잇 세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길가에 나와 있는 거라지 세일 표지판들을 따라가 보면 집안의 각종 물건들이 가격표를 붙이고 전시되어 있다. 잘 사는 동네, 조금 못한 동네에 따라 물건의 질이 다를 뿐, ‘신상’이 확실히 아닌 것은 모두 똑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손 때 묻은 물건들을 들고 가격을 가늠하며,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역사를 얘기하고 누군가 한때 사랑했던 물건을 품고 돌아온다. ‘신상’이 아니어도 마음이 열리고, ‘신상’이 아니어도 공감이 간다. 우리 집에도 어느 에스테잇 세일에서 구한 흔들의자가 어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침저녁으로 가족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특히 미국의 집들은 몇십 년씩 된 것은 기본이랄 만큼 오래된 것이 보통인데 언젠가 집을 보러 다녔을 때 한 할머니를 만났다. 그 분은 집의 모양새보다 이 집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랐는지, 그 훈훈한 시간들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었다. 자녀가 자라고, 장성하여 떠난 그 꾸준한 역사가 그 집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신상’ ‘신상’ 하면서도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오래되고 따뜻하고 구식인 것을 더 원하는지도 모른다. 집에 불이 난다면 어제 새로 산 ‘신상’ 구두가 아니라 온 가족의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이라든지 편지 등을 가져가겠다는 마음이 그것이다.
“Oldies but goodies” “친구와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처럼 누구나 오래된 것에 대한 그리움들이 있지 않은가.
나이 들어 미국에 온 사람들이 친구가 없다는 말은, 오랜 역사를 함께 한 사람이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철없던 시절 만난 사람들과 세상물정을 알고 난 후 만나는 사람들과는 그 깊이부터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가을 새 학기가 시작되며 여기저기서 ‘신상’이 쏟아진다. 멀쩡한 가방을 두고 ‘신상’ 책가방을 사고 싶기도 하고, ‘신상’ 가전제품에 반해 멀쩡한 집안 가전제품을 째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잡는 것은 오늘 ‘신상’을 사도 내일이면 더 이상 ‘신상’이 아닐 것이라는 위안,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신상’보다 어떻게 오래 잘 익어 가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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