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남자들은 무뚝뚝하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하는 이야기는 “아는, 밥도, 자자!” 이 세 마디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들은 이 한마디로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합니다: “내는 니밖에 없다!”
우리들은 나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실 자식을 향한 어머니들의 사랑이 그에 가깝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랑은 그렇지 못합니다. 죽고 못사는 애인들의 사랑도 세월의 무게에 눌리고 삶의 질곡에 낡아지고 나면 마음은 원이로되 현실이 받쳐주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들의 사랑도 이혼과 가정폭력과 배우자의 외도와 경제적인 궁핍 때문에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롭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외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조건과 한계 때문에 줄 수 없는 그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늘 비판 당하고 평가 당하고 무시 당하고 외면당하면서 삽니다. 학위도 얻고 재산도 모으고 주변에 사람도 모아 보지만 정말 “내는 니밖에 없다!”는 말을 실천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살합니다. 인생을 포기합니다. 세상을 원망합니다. 될대로 되라고 막 삽니다. 무엇엔가에 중독되어 그 외로움을 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갈증은 더 심해 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랑을 주십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신 구세주지만 동시에 내게 온전히 집중해서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아무리 사랑많은 교회의 목회자도 인간적인 제약에 걸려서 줄 수 없는 사랑입니다. 나의 손을 꼭 잡고 나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말씀하십니다. “내는 니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말대로 실천하십니다.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세상에 어려움이 닥쳐도 힘차게 살아갑니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인생을 포기해야 될 것같은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집니다. 인생에 대한 기대를 가집니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한 교제의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런 사귐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경기가 어렵고, 살기가 힘들고, 뜻하지 않은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 여기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이고 배우자가 외면할 때 이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힘을 얻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