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의 어머니가 상담을 청해왔다. 이유인즉슨 아들이 소중한 방학기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이런 부모들의 상담이 부쩍 많아졌다. 긴긴 방학동안 숙제를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아니고, 특별활동인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SAT 성적을 향상시켜 놓은 것도 아니니, 부모의 속이 타는건 당연한 것이리라.
“아무리 사춘기라고는 하지만 이건 자식이 아니라 웬수(원수)에요.” 자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다 신경쓸 수 없으니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어 더욱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공통된 점은 컴퓨터 앞에서 밤을 지새기도 하고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오후 두 세 시에 일어나 가기싫은 SAT 학원을 억지로 간다는 점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런 학생들의 경우 숙제를 했을리는 만무하다. 억지로 간 학원에서는 공부를 하는둥 마는둥, 학원이 끝난 후엔 친구들을 만나 밤늦게 들어오는 걸 보니 의심스런 점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더더군다나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운전도 하는데 혹 아직 해서는 안될 술이나 담배를 하는건 아닌지 부모들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날만도 하다.
의심을 가득 품고도 아이들에게 내지르지 못하는 부모를 보니 속으로만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 역시 학생보다는 부모의 마음에 가까운지라 학생들을 지도해 보지만 아이들에겐 나의 이야기도 일장 연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고교시절 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봤다. 한창 예민한 시절이라 그랬던가. 아직도 영화의 스토리와 장면들이 머리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유행어처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고교시절 뿐 아니라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학교 공부 참 부질없다”며 넋두리를 늘어 놓기도 했다. 분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내가 생각하기에 초등학교 시절의 교육은 내게 세상의 기본을 배워가는 토대가 되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지식들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20여 년 전 학생들을 향해 쏟아내던 담임 선생님의 소중한 말씀은 지금은 나의 입을 통해 이젠 나의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이제는 누군가의 인생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말이다.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 속의 강감찬 장군이, 어머니가 들려주던 자장가의 한 소절이, 친구들과 공을 차며 흘렸던 땀 방울이, 책장을 넘기며 하셨던 선생님의 이야기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거대한 토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때의 내가 지금처럼 세상의 이치를 알았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살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후회로 남는다.
그 때문일까? 나는‘잔소리 꾼’이 되어 버렸다. 어린 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내 학생이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귀가 따가울 정도의 잔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지금 받고 있는 삶의 교육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어린 날의 나처럼 그들은 아직 그 의미를 알 턱 없기 때문이다. ‘최고’ 보다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 얼마나 나이를 먹게 되면 그 의미를 바로 새길 수 있을까?
이제 2008년 새 학년을 맞이한 우리의 자녀들이 정직한 마음과 성실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나는 오늘도 잔소리를 쉬지 않을 생각이다.
앤드루 박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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