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공휴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중요한 사건은 일요일 날 잘 일어난다. 사람들의 의표를 찔려 효과를 최대한 거두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마음을 놓고 있을 때가 적기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의 서곡인 진주만 기습 공격도 6.25 사변도 일요일 날 일어났다.
일요일 날 일어나는 것은 전쟁만은 아니다. 지난 3월 월가의 유서 깊은 투자회사인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로 파산에 직면했을 때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의 개입으로 JP 모건 체이스가 인수를 발표한 것도 일요일이었다. 미국은 물론 아시아 금융 시장 개장 전 일을 마무리 지어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9월 위기설’로 세계 금융 시장의 불안이 고조돼 가고 있던 지난 일요일 연방 재무부는 미 양대 모기지 회사인 페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사실상 국유화를 선언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출로 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이 두 회사의 몰락을 방치할 경우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금융 시장이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 두 회사가 직접 발행했거나 보증을 선 모기지 총액은 5조달러에 달한다. 미 전체 모기지 시장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다. ‘망하게 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큰’(too big to fail) 회사의 대표적 사례다.
연방 정부는 처음 이 두 회사가 자체적으로 추가 증자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손실 폭과 파산의 위험이 커지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시가 총액의 90% 가까이 추락한 이들 주가는 8일 하루 다시 80% 떨어져 이 두 회사 주식을 갖고 있던 투자가들은 거덜이 났다.
반면 이 회사 발행 모기지를 갖고 있던 기관이나 개인들은 원금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게 됐다. 연방 정부가 사실상 이들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그 동안 묵시적이었던 정부 보증이 이제는 더욱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 인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주식은 물론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그 동안 투자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모기지 시장의 불안이 일단 해소된 탓이다.
연방 정부의 페니와 프레디 인수에 얼마만한 공적 자금이 들어갈지는 분명치 않다. 회사 당 1,0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까지 쏟아 부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이 돈이 모두 납세자 부담으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액수의 돈이 정부 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연방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일단 시장을 안심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두 회사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인 주택 시장이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계속 악화할 경우 정부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채무를 떠안은 미국 정부의 신용도 추락할 위험이 남아 있다.
이번 사태로 하나 분명해진 것은 이익과 책임이 분리된 반관 반민식 기업 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페니와 프레디는 개인 투자가들의 돈으로 세워진 사기업이면서도 만약의 경우 정부가 지불 보증을 하는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다른 경쟁 업체보다 안전한 것으로 여겨져 싸게 돈을 얻어 쓸 수 있었다.
‘이익이 나면 내 돈이고 망하면 정부 책임’이라는 구조를 이용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장사를 해 온 것은 물론이고 회사 경영진들은 능력보다 워싱턴 정가와의 연줄이 더 중요한 인선 기준이었다.
연방 정부는 금융 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대로 이번에 인수한 두 기업을 민영화해 모기지 시장에서 손을 떼는 대신 모기지 융자업체에 대해서도 은행에 준하는 엄격한 감독을 해 다시는 수입과 재산을 묻지 않고 돈을 주는 ‘닌자 론’(no income, no job or asset) 같은 희한한 용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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