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는 트로이의 왕 프리암과 왕비 헤쿠바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다.
그 미모에 반한 아폴로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줬지만 아폴로의 구애를 거절하자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도록 하는 저주를 함께 내렸다.
카산드라는 그리스인들이 남겨두고 간 트로이 목마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성안에 들이지 말 것을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를 미친 것으로 취급해 방에 가둔다. 결국 트로이는 망하고 카산드라는 노예로 그리스에 끌려갔다 죽음을 당한다.
한 나라가 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들을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끝에 가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춘추 전국 시대부터 진한을 거쳐 삼국지의 무대인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나라들이 등장했다 사라져 간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들 나라가 망하기 전 꼭 여러 충신들이 나와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고 목숨을 걸고 간하지만 왕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 똑같은 패턴이어서 나중에는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의 멸망을 두고 “신의 뜻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망할 때가 되어서 망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도둑이 들 운명이면 개가 짖어도 주인이 듣지 못한다.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출에서 시작된 미국의 금융 위기가 최악의 국면을 향해 치닫고 있다. 민주 공화 양당 지도자들과 백악관이 합의하에 만든 7,000억 달러 규모의 금융 구제안이 29일 예상을 깨고 아슬아슬한 표 차로 연방 하원에서 부결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사상 최대 폭인 777 포인트 폭락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잭팟이 터지는 숫자인 777이 나왔다는 점에서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기는 하지만 경기 회복까지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하리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부동산 버블 붕괴와 이에 따른 신용 경색 위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돼 온 일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1년에 20%씩 집값이 오르는 일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으며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인 이 거품이 터질 때 심각한 금융 위기가 오리라는 것을 수없이 경고했다.
단지 ‘미국 집값은 이민자들 때문에 괜찮다’는 엉터리 전망을 내놓은 일부 분석가와 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 해 온 언론들, 집을 튀겨 팔아 돈 버는데 눈이 먼 투기꾼, 가짜 서류로 론을 얻은 주택 소유주, 이들을 등에 업고 수수료 챙기기에 바빴던 융자 회사와 브로커, 이런 부실 모기지를 근거로 파생 상품을 만들어 떼돈을 번 월가의 투자 은행과 헤지 펀드, 버블 위에 얹힌 경제 호황을 좋아라고 바라만 봐 온 정치인과 금융 감독 기관의 합창 소리에 가려 경고가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들 중 어느 누구한테서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나한테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구제안이 끝까지 통과되지 않을 경우 세계 금융 시장은 마비되고 주가는 폭락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다. 양당 지도자들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구제안을 일부 수정해 다시 표결에 부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과가 되더라도 시일이 지체돼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그 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아직 미국 경제를 되살릴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형국이 안개 낀 낭떠러지 일보직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돼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후세 사가들은 부동산 버블에 대한 숱한 경고가 무시되고 연방 하원이 구제안을 부결시킨 것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릴지 모른다. 워싱턴의 결단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지금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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