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중략
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고등학교 모의고사 국어 시험 시간에 지문으로 나왔던 유치환의 <깃발>이라는 시이다.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이 시를 처음 본 순간 그야말로 찡 통해서 문제 풀 생각은 하지도 않고 넋을 놓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뜨거운 것이 치받치고 올라갔다가 슬며시 내려오면서 감동을 주던 아릿한 느낌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나는 그 느낌을 ‘통했다’고 표현한다.
시를 공부할 때 늘 나오는 시험 문제 하나! 이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공감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 내가 느낀 느낌을 다시 해체시켜 눈이냐 코냐 아니면 이거 저거 다냐를 해부하듯이 따지다보면 시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시는 작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시대가 어떠했는지 그것을 알기 전에 그냥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것이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학하고 첫 수업시간에 시를 배우게 됐다. 몇 편의 시 중 자기가 좋은 시를 외우고 느낌을 말하도록 했다. 사실은 외우기 쉬운 시를 외웠을 수도 있겠지만 그 느낌만은 어느 비평가의 글보다 솔직하고 쉽게 와 닿았다.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옆에서/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옆에서/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아무도 없다./아무도 없이/나무들이 흔들리고/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함께
강은교 시인의 <숲>이라는 시의 일부다. 아이들은 이 시를 제일 많이 선택했는데 느낌 발표가 기가 막힐 정도로 시답다. 어느 아이는 나무 하나가 숲 전체를 흔드는 느낌이라고 했고 한 아이는 슬프다는 단 한마디로 표현을 했다. 한 아이는 깜깜하단다. 책의 바탕색이 녹색의 파스텔 톤으로 그려져 있는데도 깜깜하다고 느끼고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다. 이것이 바로 ‘통했다’는 것이다. 시를 읽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내 안 그 어딘가에 시어들이 들어와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느낌을 표현하는 그것이 시와 통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지금 교실에서 눈동자를 굴려가며 기억을 더듬어 시를 외우고 느낌을 말하듯이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도 시 한 편은 외우고 시와 ‘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매일같이 밥만 먹을 수 있는가? 가끔 별식을 먹어 입맛을 돋우고 분위기를 바꿔보듯이 바쁘게 바쁘게 살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시 한편을 읽어보고 통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시와 통한다는 것은 삶에 지쳐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영양제 주사가 아닐까 싶다. 가끔은 별식처럼, 영양제 주사처럼 시를 읽어볼 일이다. 세상 살기 힘들어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의 시 하나-정끝별의 <밀물> 전문이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두 척의 배가/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벗은 두 배가/나란히 누워/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무사하구나 다행이야/응, 바다가 잠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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