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자의 도넛의 힘은 은근히 세다. 지난 11년 동안 중학교 교사를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인생의 지혜를 배웠는데 그 중에 하나는 도넛의 파워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도넛이 너무 달고 살찌고 건강에 좋지 않다며 기피하지만 많은 미국 사람들은 아침에 커피와 함께 즐겨 먹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피 도넛이라는 체인점에서는 기름에서 튀기자마자 나온 도넛을 맛보기 위해 수십 분씩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설탕 덩어리 빵을 왜 그리 좋아 할까”하며 궁금해 했었다. 가끔 출근하면서 교사 사무실에 핑크색 도넛 상자를 들고 들어가면 동료 선생님들과 비서들에게 거의 영웅과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한다. 대단히 큰일을 한 사람처럼 고마워한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생들에게 도넛은 그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게 할 수 있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생 합창 콘서트에서 수다를 많이 떨고 에너지가 넘치고 늘 배고파 하는 학생들에게 소리치며 야단하는 것보다 “너희들 조용히 있다가 노래할 때 열심히 하면 내일 도넛을 가져 오겠다”라는 약속을 하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난다.
선생님이 쏘는 도넛 하나 먹기 위해 콘서트 동안 떠들지 않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오히려 말을 듣지 않는 다른 학생들에게 똑바로 하라고 야단을 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에게는 하나에 50센트짜리 도넛은 학사 처벌을 하겠다는 협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여준다.
공연이 끝난후 다음날 나는 꼭 학교의 관리인들(school custodians)에게 큰 상자의 도넛을 선물한다. 우리 학교의 관리인들은 공연이 시작하기 몇 시간 전부터 부모님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학생들이 서야 할 스테이지를 준비해 주고 공연장을 깨끗이 치워주며 또 우리의 공연이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불평 없이 도와준다.
비록 조그마한 감사의 선물이지만 그 덕분에 일년 내내 내 교실은 깨끗한 편이고 대부분의 관리인들은 나를 지나칠 때마다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내가 부탁한 것 대부분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무거운 캐비닛을 옮겨야 한다” “사다리가 필요하다” 또는 “의자가 부족하다” 같은 부탁을 하면 하루나 이틀 사이에 바로 도와준다. 다른 선생님들은 대부분 훨씬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아예 부탁 하지도 않고 자신이 처리해 버린다. 나도 가끔 그런 적이 있지만 되도록 이들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도넛의 힘이 이렇게 강하다는 것은 우연히 알게 됐다. 별 생각 없이 고마운 뜻에 출근 전에 가게에 들러서 가져간 것뿐이다. 내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겨우 6~7달러 내고 한 다즌 사 가는 것을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 뭔가 깊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언뜻 생각하면 싸구려 뇌물을 줘서 이 사람들이 나에게 유익하게 영향을 끼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부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 뜻을 작은 정성을 통해 보여주며 서로 더 열심히 살자는 격려를 하고픈 내 마음이 받는 이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 이상 ‘짠 한국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를 위해 일해 주는 사람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며 자주 작은 정성을 보였으면 한다.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부드러워지고 생산성이 늘어날 뿐만이 아니라, 가끔은 영웅 대접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서재필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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