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팔 들기가 무척 고통스럽다. 지난 두어해 요가 반에서 남들에 뒤질세라 호기를 부렸는데 이젠 팔 굽히기조차 힘들다. 어느 날, 몸을 풀다가 뚝 하는 소리가 났다. MRI 검사결과 어깨 힘줄이 끊어졌다는 게다. 오랜 세월 과한 운동으로 누적된 근육 손상 때문이라 했다.
새벽 수술실은 선잠 깬 몽롱함과 소독내 풍기는 긴장감이 알맞게 섞여있다. 간호사들이 친절하게 수술준비를 시켜준다. 홑청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비닐 캡을 쓴다. 뚫린 뒤가 허전해 자꾸 가린다. 차곡차곡 접어 침대 밑에 둔 평상복과 구두를 다시 쳐다본다. 벗은 허물 속에 내 묵은 연륜이 보인다.
깨어나니 마취 덜 풀린 어깨와 팔이 마치 나무토막 같다. 문득 불구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일어 마음이 짠하다. 허나 한가히 누웠으니 왠지 불안하다. 미국 생활 30년 만에 처음 맞는 3주 장기병가. 나 없으면 지구가 서 버릴 양 촌각을 다투며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던가? 수술 전날까지 조바심을 쳤었다. 병가 중에 진행돼야 할 일들을 팀별로 점검하고, 이사회로 올라갈 주요 안건들을 따로 챙겨 막바지까지 확인을 거듭했다. 그러고도 미심쩍어 셀폰 번호까지 남겨 놓고 나오지 않았던가.
진통제를 먹고 깬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책이 놓여 있다. 에크낫 이스워런의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란 책이다. 상식적인 얘기려니 하고 책장을 넘긴다. “당신은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이루려고 조바심치는 강박형 인간입니까? 허면 당신은 무능력잡니다. 평생 화만 내다 말 겁니다.”
정신을 번쩍 든다. “서두르면 서둘수록 시간은 더 부족하지요? 하루에 많은 걸 이루려 서두를수록 준비가 덜 된 불만스런 내일을 맞을 뿐입니다.
초고속 현대에 사는 우리의 마음은 늘 급하지요. 쏟아지는 정보를 빨리 익히고, 많은 일을 속히 끝내야 행복해 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지요.” 꼭 내 얘길 하는 것 같다.
사실 정보량은 늘었어도 판단력은 더 흐려지지 않았는가. 인터넷 고속망은 뚫렸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주위가 훨씬 편리해졌어도 늘 시간에 쫓기고, 달에 갔다 왔다지만 이웃과는 더 멀어졌다. 공기는 정화해도 우리들 양심은 더 오염됐고, 나노기술로 원자를 쪼갤지라도 인간의 편견은 못 깨지 않는가. 여가는 늘었지만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진 현대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저자는 마음의 속도를 늦춰보라고 권한다. “급한 마음은 결국 행동으로 굳어집니다. 급하면 화부터 내지요. 빠른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화, 두려움, 걱정을 먼저 불러옵니다. 반면에 사랑, 인내 같은 긍정적 생각은 느립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감정들은 마음의 속도를 늦출 때만 보이지요.
속도를 늦출수록 우리는 더 큰 통제력을 얻습니다. 더 집중하고, 여유를 갖고 남을 배려하게 되지요. 이게 마음의 역학입니다.”
점점 깨달음이 밀려온다. 바쁘게 살아야만 많은 걸 성취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하루를 꽉 채우지 말라고 한다. 천천히 산다고 비효율적으로 사는 게 아니다.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하면 질이 더 높아진다. 삶을 돌아볼 틈이 난다. 무엇보다 나를 상케 하는 나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작가는 느린 마음을 갖기 위해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터득하라고 말한다. 채널 돌리기가 한 방법. 과거 일에 화가 치밀거나, 미래의 불안이 밀려오면, 재빨리 TV 채널 돌리듯 마음의 채널을 현재로 돌리라는 게다. 그래야 통제 가능한 현재의 내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명상이다. 명상은 느린 마음을 체질화시켜 평정심을 갖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훈련이라 했다.
힘줄이 끊어진 것도 바삐 살다가 나를 놓친 탓이다. 빠른 마음은 병든 마음. 느린 마음은 건강한 마음. 고요한 마음은 거룩한 마음이란 가르침을 묵상한다.
김희봉 수필가·환경엔지니어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