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윤정숙 뉴욕가정상담소 소장
레지나 김 가정문제연구소 소장
김순옥 무지개의 집 사무국장
에스더 임 변호사
가브리엘라 리치맨 InMotion 소속 변호사
가정폭력은 한 가정 내부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직장의 생산성 감소와 잦은 직원 교체에 따른 비용 부담과 의료비 지출 증가 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직장과 사업체, 사회 전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본보는 가정폭력 예방시리즈 네 번째 순서로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는 한인 관련기관의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인사회 가정폭력 실태를 짚어보고 예방과 근절에 있어 한인사회의 역할 및 앞으로의 개선책 등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진행 및 정리: 이정은 기자>
한인사회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윤정숙(이하 윤): 상담접수 통계만으로는 최근 수년간 다소 줄고 있다. 2004년 기준 24시간 핫라인 상담 접수가 1,100건이었던 반면, 지난해에는 절반 수준이었다. 그간 관련기관들이 예방 및 홍보교육을 펼친 덕분일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홍보가 제대로 안된 탓일 수도 있다.
레지나 김(이하 레지나): 한인사회에 관련 기관이 여럿 활동하다보니 상담건수가 다소 분산되긴 하지만 우리 기관 역시 지난해부터 조금씩 가정폭력 상담은 줄고 있다.
김순옥(이하 김): 우리 기관의 경우 가정폭력 케이스는 타 기관에 의뢰를 맡기고 있지만 셸터 거주를 필요로 하는 응급 케이스만 본다면 지난해에 비해 올해 오히려 10%가 증가했다. 특히 뉴욕한인사회처럼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지역에 사는 타지역 한인들의 의뢰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한인사회 가정폭력의 실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레지나: 한인들의 소극적인 신고 태도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신분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신고하다가 불법체류 신분이 노출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거나 또는 가해자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합법체류신분 취득을 취소시키겠다는 협박을 받기 때문이다.
에스더 임(이하 임):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미국에 합법 또는 불법으로 입국했더라도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취득, 보장받을 수 있다.<본보 10월11일자 A2면 가정폭력 예방 시리즈 ③번 참조> 법원이 피해자의 체류 신분을 묻거나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한인들이 기억하길 바란다.
가정폭력을 거론할 때 주로 여성을 피해자로만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피해자도 늘고 있다는데?
윤: 물론이다. 분명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미국사회 의 경우 남성 피해자의 상당수는 같은 남성 파트너로부터 피해를 입은 동성애자를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갈수록 청소년 데이트 폭력도 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이성간의 건전한 만남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과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가브리엘라 리치맨(이하 가브리엘라): 가정폭력 문제는 여성과 남성뿐만 아니라 연령대별로 노인학대도 분명히 포함해야 한다. 자녀로부터 학대당하는 노인들이 많고 이 역시 가정폭력의 한형태다.
김: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언어폭력과 경제적 학대에 시달리는 케이스가 접수된 적이 있다. 아들의 월급 통장을 시어머니가 관리하면서 며느리보고는 나가서 돈 벌어오라며 온갖 험한 말을 하며 못살게 굴기도 한다. 반대로 친가나 외가 노부모에게 자녀들을 맡기고는 최저 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도 안되는 용돈을 준다는 명목을 앞세워 대신 방값과 식비를 뜯어내는 교묘한 방법으로 노인들을 학대하는 경우들도 있다. 가정폭력을 단순히 부부만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여러 시각에서 넓고 큰 안목으로 다가가야 한다.
가정폭력 신고로 가해자가 체포되면 그 후 절차는 어떻게 되나? 무조건 처벌을 받게 되나?
임: 지역경찰서마다 가정폭력 전담부서가 설치돼 있다. 일단 경찰에 신고해 현장에서 가해자가 체포되면 폭력의 정도에 따라 가정법원으로 보내질지 형사법원으로 보내질지 결정된다. 재판으로 진행되더라도 피해자는 증인 출두만 하면 되고 굳이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는 없다. 경찰에 체포됐다고 해서 가해자가 무조건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니다. 피해 정도나 폭력 수위에 따라 상담치료로 대체할 수 있다. 또한 가정법원은 임시 2개월에서 최소 2년 내지 최장 5년까지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피해자는 경찰 신고 대신 직접 가정법원을 찾아 신청하면 된다.
가브리엘라: 일단 경찰이 출동하면 가해자를 체포하지만 형사법원 대신 가정법원에 보내져도 가해자는 손해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윤: 법원에서 한국어 법정 통역관을 요청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가정상담소에서는 피해자가 원할 경우 법원 출두에 동행해주기도 한다. 영어가 부족한 피해자인 경우 피해자가 때로 가해자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영어 의사 전달이 중요하다.
김: 실제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케이스가 있었다. 백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여성이었는데 병원에 실려 갔을 만큼 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남편이 먼저 경찰에 신고했고 아내가 먼저 폭력을 가해 자기방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을 가하다 상처를 입었다고 진술, 서로 맞고소가 접수된 경우다.
가정폭력 예방과 근절의 저해 요소는?
김&가브리엘라: 매도 맞아본 사람이 때릴 줄도 안다는 말이 있다. 가정폭력 가정에서 자란 남성의 50%가 가해자가 되고 여성의 50%는 피해자가 된다는 학계 연구도 발표된 적이 있다.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어권 1.5, 2세들이 한국에서 배우자를 찾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부모세대만 보고 자란 탓에 특히 한국 여성은 순종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결혼하기도 한다. 동시에 영어권에서 자랐어도 한국 남성의 권위감도 함께 갖고 있어 가정생활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한인사회에 모범적인 가정의 남편상, 아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모델 부족이 아쉽다.
레지나: 젊은 층으로 연령이 내려갈수록 기성세대의 여성들처럼 그저 맞고 참고만 살지 않는다. 한국은 벌써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도 많아진 반면 한국사회나 미주 한인사회나 남성들은 아직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나쁜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인사회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셸터가 부족하다. 현재 상황과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김: 무지개의 집은 1993년 설립 이후 줄곧 셸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 번에 최고 6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셸터를 직접 운영하는 일은 무척 힘들지만 한인사회에 꼭 필요한 서비스다. 불경기에 가정불화로 부부갈등도 많아져 앞으로 더욱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걱정도 앞선다. 여성 피해자뿐만 아니라 동반하는 자녀들이 함께 머물며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한데 현재 무지개의 집 셸터는 어린이를 수용할 환경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미국 기관은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잠시 머물다가는 기능이지만 한인사회 셸터는 정신적으로 학대당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직업교육을 시켜줄 재활훈련의 공간도 필요하다. 특정 기관이 단독으로 하기 어렵다면 여러 관련기관이 공동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윤: 상담소는 직접적으로 셸터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대신 셸터가 필요한 피해자에게는 셸터를 제공하는 기관과 연결해주고 있다. 셸터 필요성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셸터를 트랜지셔널 하우징 개념으로 운영해 임시 거주기간 동안 스스로 독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해주는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레지나: 연구소는 20여년간 쉼터를 운영해왔다. 현재 뉴욕시정부의 기금 지원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쉼터를 제공하려는 과정이지만 시 기금 지원 난조로 쉼터를 옮겨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어 현재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 인모션에서도 셸터를 제공하고 있다. 한인들만을 위한 셸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00-621-HOPE로 전화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정폭력 관련 한인사회의 정확한 통계자료가 부족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윤: 맞는 말이다. 한 기관에서만 통계자료를 집계하는 것은 한인사회 전체를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많다. 사회학이나 범죄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더불어 한인사회 전체 프로젝트의 하나로 공동 연구의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상담소를 중심으로 관련기관들과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마지막 당부의 말은?
임&가브리엘: 무엇이든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보관해둬라. 관계를 끝내겠다며 홧김에 사진 등을 모두 버리면 추후 재판 진행에 증거 자료가 부족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좌담회 등 대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정폭력 예방의 첫 시작이다. 지역사회가 노력해 자주 대화의 기회를 갖길 기대한다.
레지나: 어떠한 경우에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누구든지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고 생활한다면 가정폭력 피해를 당하더라도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윤: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남성, 남편들의 참여가 특히 중요하다. 그래야 자라나는 아이들도 남녀 성의 구분 없이 이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
김: 관련기관 뿐만 아니라 한인사회 타 기관들과 협력해 매년 특정 기간을 정해 가정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범동포적으로 펼치는 캠페인 전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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