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1947~) ‘꼬리를 흔들며’ 전문
비밀이지만 나의 엉덩이에 꼬리가 하나 생겼네
이렇게 고백하면 사람들은
당신도 이젠 기교가 제법 늘었다고
말하겠지만
엉덩이를 직접 보여드릴 수도 없고
안 보이는 것은 그냥 믿어주는 게 상책이지
결국 날개는 안 생기고 꼬리가 생겼네
나는 이 꼬리가 싫지 않네
은근히 한 번씩 건드려보기도 하지
날개는 위험하지만
꼬리는 잘 흔들면 출세도 한다지 않는가
꼬리라는 말이 우선 맘에 드네
꼬리 꼬리 하고 입술을 자꾸 오므렸다 펴면
매우 인간적인 재미에다
꼴찌나 밑바닥이 주는 안도감마저 있어
본질에 닿은 듯
패잔병의 흉터 같은
아니 귀여운 여우 같은 꼬리
사랑하는 이 앞에서 슬쩍 흔들면
이 꼬리 붙잡으며 제발 떠나지 마라
애원해 줄까
오, 비너스에게도 없는 꼬리
나에게 생겼네
이제 이 꼬리 흔들어 당신을 잡아볼까
추락의 위험이 있는 날개보다는 꼬리를 쳐서 출세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세상. 도전도 모험도 없이 요령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잘만 흔들면 출세도 할 수 있다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대는 데도 전혀 비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꼴찌와 밑바닥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패잔병의 흉터라는 고백 때문? 다 아니다. 여우처럼 흔들어대는 꼬리에 유쾌하게 홀린 것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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